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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피어난 살구꽃

샌드위치 커미 2023. 7. 9. 15:47

나의 어머니는 아름다운 사람이셨을 겁니다.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찾아오는 4월에 피어나는 살구꽃처럼


나의 첫 기억은 한없이 일그러진 어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7살 이전의 기억은 희미하다고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의 유년시절만은 짓밟혀 그 흰 몸을 갈색으로 물들이는 목련잎 마냥 선명하기만 합니다.

 

나의 기억 속 어머니는 언제나 물건을 집어던지시며 무언가에 분노함과 동시에 한없이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마른 가지처럼 말랐으며 햇빛을 보지 않아 피부는 창백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희었고 스스로 만들어낸 상처들에 그 흰 피부는 유감스럽게도 이제 와서 회상해도 감히 곱다고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넌 괴물의 자식이야. 내 아이가 아니라고!"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그저 증오스러운 괴물의 자식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어머니라 불렀지만 그녀는 나를 아들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내게 어머니 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괴물의 자식일 뿐이었습니다.

 

".....내 아이의 이름을 내놔. 그건... 그건! 널 위한 이름이 아니야!!!"

 

제대로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즈음 어머니는 내가 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 이름을 내게서 가져가려 내게 손을 뻗었습니다.

날카롭고 투박하며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손톱은 나의 이름을 끌어당기지 못하고 그저 어렸던 저의 볼에 긴 상흔을 남길뿐이었습니다.

 

"후작부인께서 광증이 도지셨다! 조속히 별장으로 모셔라!"

 

그 상흔은 내 볼을 스쳤을 뿐 아니라 우리를 잇던 끈을 끊어 나는 어머니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를 데려가는 우왁스러운 기사들의 손길과 나를 보는 애정 하나 담기지 않은 아버지의 시선에 나는 어째서인지 어머니의 품에 달려가 안기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시선도 손길도 무엇하나 저들과 다르지 않은데 나는 끌려가는 어머니를 보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함께했던 그리고 어머니가 그들에게 끌려갔던 방으로 가보면 한때 나의 볼에 있었던 상처와 똑같은 흔적이 벽지에 남겨져 있습니다. 그 벽지를 쓸어보면 그날 어머니손이 나의 손을 스쳤던 감각이 생생해집니다. 따갑고 피가 흐르던 그 감각은 분명 고통일 테지만 어째서인지 그 손길이 한없이 그립기만 합니다.

 

그렇게 어머니가 그들의 손에 끌려가고 어느샌가 내가 어머니와 함께한 봄보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봄이 길어져버렸습니다. 어머니가 없이 살구꽃의 꽃잎이 모두 떨어질 만큼의 계절이 지나고 동생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무렵 나는 어머니와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어머니와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손찌검이 두려운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의 따듯한 봄을 덮쳐오는 추위 같은 말들이 시렸지만 그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는 항상 화가 나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욱 한없이 슬퍼 보여서 나는 어머니와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너.... 너!!!!"

 

하지만 여름을 바라지 않았다고 한들 살구가 맺히는 계절은 오기 마련입니다. 결국 우리는 다시 그 둘만의 방에서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 번의 계절을 보내온 그곳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날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키니시아... 이 괴물!!!"

 

우리의 재회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나에게 달려드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더 이상 괴물의 아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께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날 때리지 마세요 어머니. 욕하지 마세요. 그러면 안 돼요... 그러면...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해 버릴 거예요. 나는 더 이상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를 수 없어요. 그러니까 그러지 마세요. 하지 말아 주세요 어머니.

 

하지만 나는 한마디의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어머니의 손찌검을 순응하며 그 비명과 같은 욕설을 외면했습니다. 창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살짝 열린 창으로 따뜻한 봄바람이 먼지 쌓인 커튼을 간 지렸습니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와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나의 살구꽃이 진 그날은 따뜻하고 조금은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아주 맑고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제 부모의 손을 이끌고 나와 살구나무 아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 모습이 너무도 찬란한 그런 날, 나의 살구꽃은 낙화(落花)했습니다.

 

그 뒤는 예상대로였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했고 저에겐 배다른 여동생과 새어머니가 생겼습니다. 후작저 그 어디에서도 살구나무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물어가던 어느 날 나는 우리의 작은 방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방문을 열고 들어와 유일하게 나를 따뜻하게 안아줬던 오랜 친구인 테디의 뒷부분에 꿰맨 자국이 있는것을 발견했습니다. 정성것 꼬맨 그 실을 뜯어내자 그 안에서 몇 통의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안녕 아가, 오늘은 날이 화창하네. 네가 태어날 때 이런 꽃들이 너를 맞이해 주면 좋겠구나.

 

안녕 아가? 오늘은 너의 이름을 생각해 보았단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내게 아이가 생겼다면 붙여주고 싶은 이름이 있었어. 바로 필릭스라는 이름인데 행복이라는 뜻이란다. 그거 아니? 살구꽃의 꽃말은 행복이란다. 네가 태어난다면 너에게 꼭 아름다운 살구꽃을 선물해주고 싶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전하는 말. 눌러쓴 한 글자 한 글자에 애정이 가득 담겨 내가 무심코 들이켜 질식해 버릴 것 같은 그 애정에, 편지와 함께 동봉되어 있던 조금은 미숙한 하지만 아름답게 압화 된 살구꽃에.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구나 나는 감히 그리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지게 했나요. 무엇이 당신을 말라죽게 했나요. 한없이 찬란하고 아름답게 피어났음이 분명한 당신은 어찌하여 앙상하게 마른 가지만을 남겼나요. 아, 어머니. 나의 어머니. 나는 당신처럼 아름답게 피어나지 못할 거예요. 나는 당신처럼 한없이 찬란하게 피어나 그렇게 사라지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나의 아름다운 살구나무를 말라비틀어지게 만든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 테니까요.

 

하지만 만약 허락된다면 당신처럼 찬란하게 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