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인생이란
소녀는 외롭게 태어났다. 아니 태어났을 때에는 외롭지 않았을지언정 그녀의 곁에서 곧 부모가 떠나갔으니 소녀는 실로 외로운 존재 노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소녀는 이제는 더 이상 그 외로움에 큰 감흥을 가지지 못했다. 흐려진 기억 속에는 그 가족이라는 것이 조금은 궁금했고 가지고 싶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으나 그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 그 당시에도 크게 미련을 가지지 않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허나 어른이 된 소녀가 지금 와서 헤아려 본다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었을지 언정 소녀가 쉴 수 있는 때와 장소를 줄어들게 하여 그리 이로운 집단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무튼 간 그런 가족 없는 소녀는 외로운 시간을 보냈으나 결코 혼자는 아니었다. 어째서냐고 묻는다면 소녀의 주변에는 항상 많은 사람이 있었으며 그것은 소녀가 그것을 바라여 그리되도록 행동했기 때문이다.
소녀는 어려서부터 타인의 기분에 맞춰 연기하는데 큰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시기에 맞춰 입꼬리를 오르내리는 것, 눈을 접는 것과 입을 열어 가증스레 목소리를 변조하는 것 모두 소녀에게 있어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소녀는 언제나 주변을 관찰했으며 그것으로 상대가 가장 방심할만한 표정과 행동을 꾸며내어 그렇게 그에 맞춰 살아갔다. 그 이유를 따지자면 여럿이 있겠지만 태생부터 무채색에 가까웠던 인간 나름의 생존법이라 한다면 설명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소녀는 예나 지금이나 딱히 죽고 싶다거나 소외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소녀도 인간 나름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인지라.
허나 소외되고 싶지 않다고 한들 타인에게 무어 감정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스스로를 꾸며내어 연기하던 소녀는 여전히 무채색하고 공허한 인간이었다. 타인이 보기엔 주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타인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소녀의 모습이 꽤나 기껍게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허나 속내는 여전하였고 그렇기에 소녀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과 타인이 보는 자신 사이에 이질감과 골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한낱 해맑은 소녀에 불과한 소녀의 속은 썩어 문드러진 것인지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인지 텅 비어있는 이질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하나 아무리 소녀라 한들 완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소녀는 가끔 웃지 말아야 할 때 웃었으며 슬프지 말아야 할 때 슬펐고 화내지 말아야 할 때 화내었다. 그것은 소녀가 결코 평범한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소녀가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증명이었다. 소녀는 역시 고작 인간인지라 이리 실수하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 소녀는 독립하기 전까지 보육원에 몸담았으며 보육원의 이들이 그런 소녀의 실수에 이질감을 느끼다 점점 완벽해지는 소녀의 연기에 완전히 소녀를 받아들일 때쯤 소녀는 보육원을 나와 독립하였으며 새로운 회사에 몸담았다.
그 회사는 제약 회사를 모방하여 멀쩡한 인간을 어둠에 집어넣어 그곳에서 연료를 받는 미친 회사였다. 그리고 그런 회사는 소녀와 아주 좋은 궁합을 가지고 있었노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소녀는 그곳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미디어 매체에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는 소녀라, 그리고 미디어 매체가 아무리 사실적이라 한들 정말로 고어적인 연출을 행할 수는 없는지라 그간 소녀는 그저 고어틱한 혹은 살육 행위가 가득한 쪽을 취향이라고 생각했을 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허나 어둠에 들어간 소녀의 눈앞에서 인간의 사지가 갈가리 찢기는 것을 목격하였을 때 소녀는 전에 없는 희열을 느꼈다.
소녀는 살육을 즐기는 인간이었다. 살육은 소녀에게 있어 가장 큰 쾌락이었으며 즐거움이었다. 그것은 텅 빈, 공허한 소녀를 충만하게 해 주었으며 소녀는 대상이 무엇이었든 간에 원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망가지며 피를 튀기는 그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 혼자 어둠에 들어갈 때면 스스로가 해친 귀신이나 괴생명체의 장기를 헤집는 등의 짓을 하는 기이하고 고어적인 행위를 즐기기도 하였다. 물론 여전히 소외됨을 바라지 않는 소녀였기에 대외적 평판을 신경 써 타인과 들어갈 때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였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소녀는 여전히 소외되지 않으며, 아니 오히려 과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으며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고 소녀는 안과 밖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어둠에 들어가 쾌락을 즐기는 행위는 소녀에게 진정한 해방감을 심어 줬다. 그렇기에 소녀는 자연스럽게 어둠 내부에서 무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천성이 쾌락을 쫒는 쾌락주의자였으며 본래 태어남에 있어 강자란 것이 소녀의 천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소녀에게도 살육의 쾌락을 제외한 다른 흥미가 가는 이가 생기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외눈을 가진 자신과 똑같은 유형의 거짓말쟁이라던가. 아, 물론 이쪽은 흥미라기보단 그저 동류에 가깝다. 그 백사헌이라는 거짓말쟁이는 소녀와 제법 죽이 잘 맞는 경향이 있어 함께 어둠에 들어갈 때면 꽤나 괜찮은 동료가 되기도 하였다. 소녀 역시 그 거짓말쟁이가 자신을 동류로 알아봤음을 알았기에 그 거짓말쟁이와 함께라면 숨김없이 자신의 쾌락을 추구해 갔다.
또한 거짓말쟁이와는 다른 의미로 비슷한 성향의 인간을 마주치기도 하였다. 이 역시 동류라는 점 때문이지 특별하게 흥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아무튼 간 이자헌이라는 소녀의 팀의 팀장은 소녀와 비슷한 경향이 있어 뭐든 무력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 둘의 몇 없는 공통점이었다. 그리고 소녀가 흥미를 가지기엔 그것으로 충분할 정도로 그는 강한 사람이었기에 소녀는 자신과 아주 다르지만 비슷한 성향의 그를 충분한 동류로 바라보았다.
정말로 소녀가 흥미를 가진 사람은 김솔음이라는 신입이었다. 겁쟁이인 것이 분명한 그 신입은 자신과 같이 놀랍도록 타인을 잘 속이고 있었으며 그뿐 아니라 온몸을 날리거나 스스럼없이 본인을 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분명한 겁쟁이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데 어찌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건드리면 재밌는 반응이 돌아오는 것은 덤이었다.
그렇게 여기까지가 한 소녀의 삶이었다. 천애고아로 태어나 보육원에서 자랐으며 타인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 연기를 하였으며 살육에 흥미를 가지고 무력으로 어둠을 클리어하는, 그리고 최근 흥미를 가지게 된 사람이 생겨난. 소녀의 이름은 U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