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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irthday

샌드위치 커미 2025. 1. 11. 19:08

늦은 저녁 재운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향했다.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손가락으로 미처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아침부터 길드원들의 뜨거운 축하를 받고 이어지는 생일 인터뷰와 여러 지인들의 축하들이란, 내향적인 그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고맙고도 부담스러운 하루였다. 그나마 레온이 랭킹 2위에 오르기 전 까지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신의 명성이 곧 레온의 명성으로도 직결됨을 알기에 고맙기도 했지만 여전히 과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현이랑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네.'
 
재운이 바쁘다는 것은 그만큼 재운이 보좌해야 하는 현 역시 바쁘다는 말. 자신이 생일을 맞을 탓에 여러 매체를 타고 축하를 받느라 현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해 그만큼 현 역시 바쁜 하루를 보냈을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재운은 그녀에게 사과의 말이라도 전하고자 휴대폰을 열었지만 어지러울 만큼 많은 연락들과 이미 늦어버린 시간에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쑤셔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일임에도 불구 무엇하나 탐탁지 않은 날의 끝을 바라보는 시각이 되어서야 재운은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바로 방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거실 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되었다.
 
'침입자...?'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조심히 거실로 걸음을 옮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순백색의 크림에 붉은 딸기가 올라간 딸기 케이크와 그 앞에 놓인 편지지였다. 그에 미처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지 못한 누군가 두고 간 것인가 싶어 조금은 경계를 푼 재운이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가 편지를 열었으니 그 안에는 정갈하고도 익숙한 글씨가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재운에게
 
생일 축하해! 안녕이란 인사보다 이 말을 먼저 건네고 싶었어. 그야 오늘은 네 생일이잖아? 물론 편지를 쓰는 오늘이 네 생일인 건 아니야. 그날은 왠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편지를 쓸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미리 쓰고 있거든. 하지만 이 편지가 네게 전해 지는 건 생일 당일이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을까? 혹시 내가 Narr처럼 이 편지를 네 생일 전에 너에게 들켰거나... 그런 Schrecken 한 일은 없어야 하지만 네 생일에 전해주지 못해서 네 생일 이후에 이 편지를 받게 된다면 날 세게 한대 쳐도 좋아. 물론 네가 그러지 않을 건 알고 있지만 Ich meine es ernst!
 
아무튼 잡설이 조금 길었네. 물론 언젠가 네게 잡다한 말들을 가득 담은 편지를 주고 또 그런 편지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그런 목적으로 편지를 쓴 게 아니니까. 너도 알다시피 이 편지는 네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쓴 편지야. 그러니까 네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조금 옛날이야기를 해볼까 싶어.
 
그거 기억나? 우리 첫 만남 말이야. 그날 진짜 끔찍하게 추웠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추운 날 네가 어떻게 그 얇은 옷을 입고도 추위에 지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니까? 물론 엄청 떨고 있긴 했었지만 추위와 맞서 싸우고 있었잖아.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부터 너한테 반한 것 같아. 그 매서운 추위와 싸워 이긴 강인함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너는 항상 내게 자신이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건 네가 내게 유일하게 하는 Lüge라고 생각해. 넌 그때부터... 아니, 훨씬 이전부터 정말 정말로 강한 사람이었어. 그러니까 나와 만날 수 있었던 거야. 너는 그날 널 구해준 걸 나라고 생각하지만 난 아니라고 생각해. 그날 널 구해준 건 그때까지 강인하게 버텨준 너 자신이야. 내가 너를 찾아간 게 아니라 너의 강인함이 날 그곳으로 부른 거지.
 
그리고 그때 널 구한 게 나라고 한들 나만이 널 구했던 건 아니잖아? 너 역시 날 구해줬어. 그때를 떠올려봐, 내가 죽을 뻔했던... 그리고 레온을 잃었던 그날. 그때 네가 능력을 각성하지 않았다면 넌 몰라도 적어도 나는 확실히 죽었었을걸? 네가 날 살려준 거야. 그러니까 일방적인 구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널 구했다면 너 역시 날 구한 거니까 우리는 서로를 구원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린 서로가 없었으면 지금의 우리도 존재하지 않을 테니 서로가 서로의 지금을 만들어준 셈이 되겠네. 꽤나 romantisch 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무엇보다 너한테 이 말을 전하고 싶었어. 지금까지의 모든 끔찍한 일들이 내 운명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너 또한 나의 운명이라면. 나는 재운아, 너와 함께하는 지금을 위해 모든 운명을 견뎌낼 거야. 넌 내 모든 운명을 통틀어서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귀한 나의 운명이야. 그러니까 음... 내 말은 널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거야.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날 사랑해 줘서 고마워, 너에게 사랑받아 기뻐, 널 사랑할 수 있어 행복해. 이 모든 게 단지 너에게 전하고 싶은 내 사랑 고백이야. 그리고 이 말을 전하는 건 네가 태어난 오늘, 네가 가장 사랑받아야 할 오늘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만약 내가 곁에 없고 많이 힘든 날이 온다면 언제든 이 편지를 꺼내봐. 몇 번이고 너에게 사랑을 전할게.
 
그럼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이 날이 맞이할 운명중 너의 탄생이 가장 사랑스러울 거라고 확신해. 오늘이 있어 널 만나게 되었어. 그러니까 그 언제보다 바로 오늘을 축복할게.
 
Mit viel Liebe.

재운은 그 편지를 읽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것뿐일까, 그대로 굳어버렸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석고상처럼 굳은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눈두덩이를 꾹 누르는 것이었다. 그리 하지 않으면 차오르는 눈물이 편지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현아...'
 
고마움과 감동, 기쁨과 벅차오름 같은 감정이 쏟아져 내렸다. 그에 자연히 손에 들어가는 힘을 혹시나 편지가 구겨지기라도 할까 바들바들 떨며 틀어막았다.
 
눈구덩이를 누른 것과 손을 떠는 것으로 누군가 본다면 화가 난 것인지 오해하기 좋은 상황이었으나 재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랑곳하지도 못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기에 차오르는 행복감을 어찌하지 못한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그리 있고는 겨우 진정하여 다시 편지를 접으려던 찰나 접힌 편지에, 즉 편지의 뒷면에 아까는 보지 못했던 글자가 떠올라 의문을 느낀 그는 다시 편지를 펴 뒷면의 글자를 읽어보았다.

:: 추신 ::
선물은 뒤를 보시오!!!

 답지 않은 장난스러운 말투로 쓰인 글에 웃음을 지은 재운은 현이 무엇을 준비했는지 짐작하려 하였으나 곧 그것을 포기했다. 무얼 준비했든 현이 더욱 사랑스러워질 거란 사실은 자명했기 때문에. 그렇게 재운은 즐거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이어 제게로 달려드는 무게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생일 축하해~!"
 
"현아...?!"
 
가벼운 무게였음에도 갑작스러웠기에 잠시 휘청거린 그는 제 품에 안긴 사랑스러운 연인의 모습을 뜯어보았다. 이전에 보지 못한 어깨가 드러난 검은색 오프숄더의 드레스와 함께 평소에 나는 체향과는 조금 다른 고급스러운 자신의 취향에 맞는 향기. 잘 정돈되어 윤기가 나는 머리와 도톰하고 윤기 나는 입...
 
"마음에 들어? 선물은 나야~!"
 
"으... 으응!!"
 
순간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저도 모르게 붉어져 화르륵 타오르는 얼굴에 재운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현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이내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의 연인을 꼭 끌어안고는 조잘조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너무 늦어서 오늘 안에 축하해주지 못하는 줄 알았어! 조금은 빨리 와야 하는 거 아니야?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
 
"아, 미안... 오늘 엄청 바빠서."
 
가볍게 책망하듯 말하는 현에 당황한 재운이 어쩔 줄 몰라하며 가벼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리 당황하는 재운의 모습에 현은 가벼이 웃으며 그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Narr~ 책망하려는 게 아닌 걸 알잖아? 그리고 서운하지도 않았어! 아무렴 누구의 생일인데. 그 정도 축하는 당연한 거 아니야?"

그리 말하며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현에 재운은 자신도 모르게 너무나 사랑스러운 제 연인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그래도... 언제부터 준비한 거야? 많이 기다렸어?"

"별로 안 기다렸어~ 나도 한 시간 전에 부랴부랴 왔거든. 조금만 늦장 부렸어도 너랑 마주칠 뻔했다니까?"

"그렇다기엔 내가 너무 늦게 왔는데... 그래도 마주쳤어도 좋았을 거야. 이렇게 큰 선물일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응? 아냐~ 설마 내가 진짜 선물을 나로 때우겠어? 나 그 정도로 구두쇠는 아니다?"

현의 목가에 깊게 고개를 묻은 재운은 짙은 자스민 향을 크게 머금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꽃내음이 자신의 연인과 퍽이나 잘 어울려 절로 웃음이 났다.

"정말? 난 다른 선물보다 이 선물이 가장 마음에 드는데."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기쁨에 차 흘린 말은 자신의 사랑스러운 연인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뭐? 너 정말~!"

답지 않게 붉어진 목가. 현은 자신의 연인이 언제 이리 능글맞아졌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놀리는 것은 자신이고 놀림당하는 것은 그였거늘 어쩌다 이리 반대가 되었는지. 물론 오늘만큼은 그를 위한 날이니 하루 정도야 너른 마음으로 자신의 포지션을 양보해 줄 마음이 있었다.

"으으, 그럼 선물은 마음에 드시나요~?"

"네, 무척요."

현은 존댓말에 똑같이 존댓말로 응수해 준 재운의 눈은 행복이란 취기에 젖어 반쯤 풀려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무서울 정도로 행복한 나머지 그 행복감에 몽롱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럼~ 이제 진짜 선물을 받으셔야죠!"

"진짜 선물?"

아까 현이 말 한 것 이외에 또 다른 선물이 준비되어 있나 재운이 고개를 갸웃한 그때 갑작스레 장난스럽게 미소 짓고 있던 현의 얼굴이 가까워져 이내 재운의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이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겹쳐진 입술. 분명 연인이 되었음에도. 여러 번 입술을 겹쳤음에도 매번 어찌 이리 달콤하고도 어려운지. 당황스러운 상황에 눈을 크게 뜬 재운은 이내 현을 밀어내지 않고 강하게 끌어안으며 그녀의 머리 뒤를 큰 손으로 받쳐 더욱 깊게 입 맞추는 것으로 기쁘게 선물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