滄海一滴
滄海一滴창해일적
넓고 큰 바닷속의 물방울 하나.
그것으로 숨 쉬던 인간은 물방울을 모두 들이켜 익사하게 되었다.
어떤 생물이 그렇듯 제 고향을 떠나 영원히 살아갈 수는 없는 법
미리견에서 들이켰던 숨을 다시 그의 고향 한국으로 돌아와 내쉬게 되었다. 이제 어디서 숨을 다시 들이켜야 하나 막막한 고민이 돌아오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결국 돌아왔구나.'
호흡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채내에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산화 탄소를 배출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발 딛는 이곳에서 제대로 된 호흡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산소를 어찌 들이키는가. 나에게 이곳은 깊은 심해 같아서 이곳의 모든 것들이 깊은 심해의 수압처럼 나를 짓눌러 왔다. 깊은 심해의 그 어둠이 불안감을 조성하듯 이곳 또한 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음에 빠르게 뛰는 심장은 한 몸을 단단히 받치고 있는 이곳이 그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심해와 다르지 않음을 말해준다.
당연하게도 반겨주는 이 없이 돌아온 심해와 다르지 않은 고향이지만 그래도 꼴에 가장 오래 발 붙인 곳이라는 듯 몸은 각인된 압박의 불편함 보다 익숙한 그 압박감에 오히려 달가워하며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머리로는 잠시나마 몸 붙였던 그리도 마음까지 붙였던 미리견을 그리워하고 있지만 어찌 몸과 머리가 함께 움직일 수 있을지. 언제나처럼 머리의 명령을 무시한 뇌는 돌아온 고향집에서 자연스럽게 깔끔히 정리된 나의 방을 찾아 스스로를 뉘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안도감이 불쾌함에도 그것을 거부할 재량은 없어 머리는 그저 언제나처럼 몸의 행동을 받아들일 뿐이다.
긴장이 풀리자 이곳에서부터 시작된 과거를 되짚어 본다. 광복회 운동을 나무라던 가족들, 그것에 그치지 않고 협박을 하거나 이 방에 가둬 한동안 퍽퍽한 빵을 씹게 했던 가족들의 모습이 환영처럼 눈앞을 스쳐간다. 이곳에서 삭혔던 질투와 동경에 찬 시선들도 저를 빼놓지 말라는 듯 환상의 뒤를 따른다.
그래, 이런 곳보다 미리견이 훨씬 나은 곳이었지. 비록 짧게 머물렀다 한들 처음 생각했던것과는 다르게 원하는것을 양껏 배우며 보람찬 일을 할수 있었다. 몸은 이곳에 있을적 보다 훨 힘들었지만 마음 맞는 친우들과 함께 하는 가치 있는 일은 그 피로도 단숨에 잊게 해 주었다. 그를 이방인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대해주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로는 감히 상상도 가지 않는 그 마음에 잠시 묻어두었던 그리움과 고마움이 피어오른다.
이어 드는 생각은 앞으로의 착잡함. 해방 이후 의학과와 의학교를 통일하였다 하였던가. 그것 때문에 마음 나눈 친우들도 미처 끝마치지 못한 가치 있는 일들도 모두 그곳에 두고 왔기에 감도는 것은 입안의 씁쓸함 뿐이다. 아마 찰나의 휴식도 허락해주지 않고 다시 이곳으로 부른 목적을 행하리라 하는 생각을 하며 무거운 눈꺼풀을 닫았었다.
그리고 예상은 당연지사로 적중하였고 나는 다음날 바로 경성제대학교로 가게 되었다. 학교가 혼란하다는 것은 언질 받아 알고 있었지만 혼란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어딜 가나 끈적하게 달라붙는 악의는 더 이상 심해가 아닌 깊은 늪에 잠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전달받은대로 무엇하나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혼란한 그 시대와 같았던 학교는 그 학생들의 냉정함 또한 빼았아 갔는지 그들에게 호의를 가지고 더 나은 개선책을 말해보아도 그들에게는 닿지 않고 돌아오는것은 질투심과 못마땅함, 한꺼풀 씌여있던 편견으로 돌아오는 가시 섞인 말들 뿐이었다. 가시 섞인 말이 아니라면 대부분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한 투명하고 끈적한 목정석을 띄는 말들. 어느정도 예상한 것들이기에 그로인해 피를 흘리진 않았지만 가시를 고르고 끈적한 탐욕을 피해 나를 위해 건내는 말들을 걸러내는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며 상처입히지 못한 말들이었지만 그 자체로 날 지치게 만드는 것들 뿐이었다.
그저 학업을 이어가고 배움을 쌓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심해의 짠나음이 가시기 전에 다리를 휘감고 올라오는 늪지대의 불쾌함에 나 또한 더 이상 이성적인 판단을 할수 없어 늪지대의 깊은 곳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모든것을 그것들로 채워버린다면 불쾌함 조차 느낄수 없으리. 같은 늪지대에 있지만 그들은 질척이는 늪지대 표면에 나는 숨 막히는 정막만이 감도는 늪지대의 깊은곳에 격리되어 버렸다. 내 스스로 원해서 들어간 그곳은 더이상 불쾌하지도 않았으며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만을 자리하게 하였다.
그렇게 깊은 늪지대에 갇힌 지 얼마나 지났을까. 숨이 막혀오는 것도 모르던 6월 25일. 늪지대를 뒤 흔드는 폭발음이 적막을 깨뜨렸다. 고막을 강타하는 그 굉음을 그 누구도 잊지 못할 것이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으니.
모든 체계가 무너져 내렸고 국가는 인력을 필요로 하였다. 나와 같은 젊은 의사들은 분명 눈이 돌아갈만한 인재들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종군하게 되었고 내가 배치받은 곳은 해외 선교부에서 보내는 자금으로 운영되는 더 이상 건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작은 병원이었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비켜."
용케도 그 건물이라 말할 수 없는 곳에서 의사로 보이는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장場이 열린 건지 아니면
장葬이 열린 건지. 소음으로 시끄러운 것이 장터의 한 부분을 연상시켰으며 코를 찌르는 내음이 비릿한 피비린내와 지독한 알코올 냄새가 아니었다면 바닥에 깔린 보 위에 널브러진 것이 물건이 아닌 사람인지 보지 못했더라면 흡사 장場이라고 오해할만한 판국이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흰 가운을 입은 이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많은 바닥을 치며 통곡하는 이들의 곡소리가 그런 잡념들을 한꺼번에 날려주었다.
그 후로는 당연하게도 지독한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서의 싸움이었다. 쉴 새 없이 몰려들어오는 우리 국군들은 그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싸웠는지 실감하게 해 주었고 전장의 여파를 이곳에서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피부를 뚫고 오는 그 참혹한 관경에 무언가 망설일 시간도 없이 들이닥치는 환자들을 하나라도 살리고자 손을 움직이고 눈을 굴렸다.
그리 바쁜데 누구에게 마음 줄 시간이 있을까 하지만 어느 사람이 그렇듯 자연스레 다시 애정을 갈구해 사람들에게 정을 주고 호의를 건넸다. 사람에게 치여 그 깊은 바닷속에 끈적이는 늪지대의 깊은 곳에 스스로 들어갔는데 또다시 바보 같이 사람들에게 기대해 버렸다. 미리견에서 만난 친우들처럼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이름을 나누었으며 과거를 공유하고 약간의 하소연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정을 준 이들을 떠나보낼 때면 언제나 후에 상황이 되면 연락하고 만남을 가지기로 약속하였지만 계절이 바뀌었음에도 그들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들이 나를 잊은 것인지 아니면 큰일이 생긴 건지 알 턱이 없지만 그냥... 그들이 나를 잊은 것으로 하기로 했다. 더 이상 그들을 걱정할 여유도 그리고 그들에게 나쁜 일이 생겨 나에게 오지 못한다는 가정도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고 한 일은 그저 그들의 안녕을 멀리서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어느 곳에서 그랬듯 나는 다시 고립되어 갔다. 더 이상 정을 주지도 않았고 필요 이상으로 다가가지도 않았다. 그저 몰려오는 환자들을 기계적으로 응대하고 조치를 취하였을 뿐. 몸이 망가져가고 마음이 스러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를 돌볼시간은 없었다. 몸은 다시 깊은 심해에 빠진 듯 무감각해져만 가는데 정신은 이상하리만치 또렷하여 이로 말할 수 없이 예민해졌다. 병원엔 긴장감이 감돌았고 마침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어떤 날이었더라. 창 밖의 벚나무에서 떨어지는 벚꽃잎들이 창 너머로 들어와 몇몇 의사들이 욕지거리를 내뱉는 날이었다. 뜨겁지 않은 따뜻한 바람이 불쾌하기만 했던 날. 그날 일이 벌어졌다.
"앞으로 내원시키는 환자를 제한하려 합니다."
환자는 병원의 수용인원을 한참 너머 섰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외국에서 지원되는 물품들이 줄어 의사들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당연하게도 병원은 앞으로 받을 환자들을 제한하기로 했고 나는 그것에 격렬하게 반발하였다.
"안됩니다. 그건 환자들을 죽이는 행위예요!"
이런 후진곳까지 찾아오는 환자들을 거절한다면 그들은 대체 어디로 향할까. 아니 향할 수는 있을까? 이곳은 전장과 조금 떨어져 있어 야전병원으로 분류되지 않는 작은 병원이었다. 이런 곳까지 도달하는 군인들은 환자들은 대체 어떤 이들이겠는가. 마땅히 치료받아야 할 곳에서 거부받은 이들이었다. 이곳에서 마저 그들을 거부한다면 그들은 그저 덮쳐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선택지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곳에 갈 수 있다고 해도 때를 놓치면? 그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야기할 것이다.
"그럼 자네는 몰려오는 환자들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예민해졌기 때문일까? 그들을 받는다고 한들 외국에서 보내주는 지원품이 없다면 그들을 치료할 수 없다. 그런 상태로 그들을 받는 것은 어쩌면 희망 고문에 지나지 않는 일. 하지만.... 그렇지만.... 지친 몸과 예민해진 정신에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반박해야 하는데 이리 환자들을 포기할 수는 없는데.
"더 이상 불만을 가진 이가 없다면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고....-----"
눈앞이 흐려지고 울렁거린다. 방관하는 것으로 사람이 죽는다면 그것은 살인일까?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의사는 살인자일까? 지독하게 비린 피냄새로 무언가 게워내보려 해도 울렁거리는 것은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머릿속을 감도는 하나의 단어는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사람을 살리고 싶었는데 그것이 그리도 죄였던 걸까....
"잠시만요...! 지원에 관련해서는...-----"
그 순간 어떤 흰 가운을 입은 여성이 회의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저런 사람이 있었던가? 그 뒤를 따라 들어온 봄바람에 울렁거림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살인자라고 속삭이던 환청은 언제 들려왔냐는 듯 먹먹함만을 남기고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째서인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가지고 온 종이를 모두에게 나눠주고는 무어라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먹먹해진 귀에 제대로 들을 수는 없었지만 결론적으로 환자를 제한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가장 먼저 든 것은 안도감 방관으로 받아야 할 치료를 받지 못해 병원에서 거부당하여 죽는 환자는... 적어도 그런 이들은 없겠구나 하는 안도감. 그 안도감에 벅차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회의가 끝난 직후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모두 자리를 떠나 이런 꼴을 보는 이가 없었던 것일까.
"저기... 이거 쓰세요."
".....!"
분명 모두 떠나간 줄 알았는데. 아까 회의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그 여자가 내게 손수건을 내민다. 병원에서 지급한 손수건이지만 이런 호의가 대체 얼마만인지. 더욱 뜨거워지는 눈시울에 재빨리 그녀가 내민 손수건을 받아 들어 눈물을 훔쳤다.
"..... 감사합니다."
"어, 아니... 아니에요! 오히려 감사 인사는 제가 해야죠!"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자 내 앞에 선 여자는 멋쩍다는 듯 몇 번 볼을 글적이더니 말을 이었다.
"당신이 마지막까지 환자를 제한하는 것을 반대해 주셨다고 들었어요. 그러지 않으셨더라면 제가 오기 전에 안건이 끝나 회의가 종료되었을 거예요."
그리고는 아까 저가 가져온 종이중 하나를 들어 흔들어 보였다.
"그럼 이것도 쓸모 없어졌을 테고... 한마디로 당신이 환자들을 생각해 준 덕에 환자를 돌려보내지 않을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이 살린 거예요. 우리가 받지 않았을 수도 있는 그 사람들. 고마워요 정말로. 환자들을 생각해 줘서."
그리고 작게 이어지는 감사인사에 기껏 눈물을 훔쳤던 것이 무의미 해지며 다시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좋은 사람이구나. 올곧고 조금 대책 없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구나. 눈앞의 여자가 불쾌하게만 느껴졌던... 하지만 더 이상 불쾌하지 않고 산뜻하고 부드러운 따뜻한 봄바람 같아서 원치 않았는데도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엑...! 어, 그.. 저기? 괘... 괜찮으세요?!"
내가 갑자기 오열하듯 눈물을 흘리자 화들짝 놀란 그녀가 안절부절못하지 못했다.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하는데... 목이 매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참으로 난감하던 찰나 눈물로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시야에 갑자기 희고 조금 투박한 손이 들어왔다.
"여.... 여기 앞에 바다가 있는데! 잠깐.. 바람이라도 쐬지 않을래요?"
어설픈 위로. 하지만 내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그 따뜻함에 무심코 웃음을 흘리며 그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노심초사하던 그녀의 얼굴이 밝아지며 나를 이끌고 병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거 알아요? 오늘 날씨 엄청 좋은 거! 하늘 좀 봐봐요!"
내리쬐는 햇살에 무심코 눈을 감았다 들리는 그녀의 말에 게츰스래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르고 높은 하늘과 만개한 벚나무 그리고 뜨거운 햇살에 혹여 어디가 상할까 구름이 만들어주는 그늘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이렇게 하늘을 보았던 게 도대체 언제였는지. 아니 병원 밖으로 숨을 돌리러 나온 것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좋아졌다. 코 끝을 스치는 짠 내음과 함께 걸음을 멈춘 그곳은 감탄조차 삼켜버릴 만큼 아름다웠기에.
"잠깐 걸을래요?"
그리고 그 앞에 멈춰서 나를 돌아보는 그녀도 이로 말할 수 없이 찬란해 보였다. 회의실에서부터 병원을 나와 바닷가에 도달하기까지 놓지 않은 손은 바닷가를 걸을 때 역시 혹여 놓칠까 하고 꼭 잡고 있었다. 그녀가 이끌어준 이곳이 환상향인지 별세계인지 도저히 내가 머물렀던 병원과 같은 세계의 것이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있죠~ 우리 병원은 너무 삭막해요. 기계적으로 고쳐나가고 그 손길을 받아들여요."
귓가에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와 그에 배경음이 되어주듯 귓가를 간지리는 파도소리. 그리고 작은 생물들이 버둥치는 소리와 볼을 간지리는 바다의 청량함에 무심코 눈을 감았다. 기계적이지 않고 부드럽고... 조금 따뜻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로 말할 수 없는 시원함에 모든 것을 놓고 몸을 맡기고 싶다는 충동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러지 못했다. 청량한 파도소리보다 내 심장소리가 더욱 컸기에.
"그런데 그러면 안 돼요~ 우리는 병을 치료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그러면 마음에 병이 들고 말아요."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지평선이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다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와 동시에 큰 파도가 우리에게 손을 뻗으려 하다 그대로 발 밑에서 흩어졌고 파도를 따라온 바람이 그녀와 나의 머리카락을 간 지렸다. 그에 실제냐 봄이 몰려와 만개한 꽃잎들이 바람을 따라 흩날렸고 우리의 머리와 옷에 안착하였다. 조화롭지 않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바다와 봄이지만 그것이 어쩐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눈앞에서 웃고 있는 그녀의 웃음이 너무 맑아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나랑 고치지 않을래요? 마음의 병. 나는 윤해일이에요."
어지러운 봄과 바다. 오래 머물렀다간 내리지 않는 열병을 얻고 그 짠내음에 절여질 것 같은데 청량하게 울리는 파도가 시원해서 볼을 간지리를 꽃잎이 아름다워 나는 그 두 가지를 어쩌면 사랑해 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들이키는 숨에 깊은 심해에서는 알 수 없었던 짠내음과 햇빛 냄새가 가득하여 어쩌면 해수면도 그리 나쁘지 않은 곳이라 생각해 버렸다. 나를 깊은 바다에서 끌어올려준 그녀는 어쩌면 내가 원하고 동경했던 진짜 의사가 아닐까. 심해의 장님을 해수면으로 끌어올려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했으니 실로 명의였다.
"... 좋아요. 고쳐봐요, 마음의 병. 저는 윤가빈입니다."
언제부턴가 세는 것도 지친 수없이 맞이한 봄을 나는 그제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봄날 이후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냐면 아니라고 할수 있다. 나는 여전히 그 병원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다 쓰러져가는 병원에서 일했으며 매일같이 환자는 몰려오고 피냄새가 코를 스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럼에도 조금의 변화가 있었다면 다시 예전과 같이 사람들과 대화하며 정을 나누고 여유가 되는 시간에 그녀와 함께 바닷가를 거닐거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다.
그때 그 봄을 지나 다시 봄을 맞고 그 봄을 지나 도달한 겨울의 막바지로 달려가며 나는 그동안 지친 몸을 조금씩 돌봐가며 한껏 예민해졌던 정신 또한 많이 호전시켰다. 달라진 것이라곤 주변에 마음을 나눌 사람이 생긴 것 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알게 되자 나는 역시 사람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빈씨....!"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꽤나 다급한 목소리에 급히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예상대로 그녀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급히 뛰어왔는지 내게 이야기도 전하지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에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도닥여 주었다.
"일단 진정해요 해일 씨. 무슨 일인가요?"
내 손길에 가쁜 숨을 진정한 그녀가 답지 않게 어두운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아.... 하아.... 그게... 병원에 전염병이 돌고 있어요...!"
받은 환자들 중 심한 병에 걸린 이 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런 증상을 가진 이가 늘어났고 기어코 다른 환자들과 의사들까지 그런 증세를 보이자 병원은 그제야 그것이 전염병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병원은 단체로 비상이 걸렸고 증상을 보이는 의사와 환자를 철저히 격리했으며 소독에 집중하였다. 당연히 방역에도 온 신경을 기울였지만... 비극은 언제나 나의 곁에 있었다.
".... 쿨럭!"
나와 함께 회진을 돌던 그녀가 돌연 기침하였고 급히 막은 입에서는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 역시 그 지독한 전염병에 전염되고 만 것이다. 당연하게도 치료제는 나오지 않았고 그녀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그녀의 곁에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병원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환자들이 들이닥쳤고 그녀의 간호는 고사하고 환자들을 돌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정신은 급속도로 피폐해져 갔고 주변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녀가 걱정되는 마음에 나날로 실수는 늘어갔다. 치료를 위해 환자들이 격리된 곳으로 향하면 발에 차일 듯 즐비한 환자들 사이에 나날이 수척해져 가는 그녀가 눈에 띄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됐어요! 치료제가 개발됐어... 그러니까 이제 곧 당신도 털고 일어날 수 있어요."
불행 중 다행으로 치료제는 어렵지 않게 만들어졌고 그로 인해 격리병동에서 환자들이 하나 둘 나가게 되었다. 그러던 사이 그녀와 처음 만났던 봄이 왔고 나는 그녀에게 치료제가 개발되었다며 괜찮을 거라고 외우듯 속삭였다. 하지만 나의 말에 그녀가 그저 웃음으로 답했을 때 그 의미를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
그녀의 병실에서 나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병원을 나섰다. 어느샌가 벚꽃을 다 지고 후덥지근한 바람이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봄이 지고 여름이 된 것이다. 나를 스쳤던 후덥지근한 바람은 흩어지지 않고 기어코 봄의 잔재를 지우고자 벚나무의 마지막 남은 잎새를 떨어뜨렸다.
"......"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으며 왜인지 오늘밤은 숙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환자들의 상태를 살필 겸 다시 병원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부고는 언제나처럼 갑작스러웠다.
"..... 해일 씨?"
분명 방금 전 내게 흐릿한 미소를 지어주었던 그녀는 그 흐릿한 미소만을 남기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뒤늦게 담당의가 전하는 말로는 개발된 약에 그녀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 들어있어 사용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부터 희망은 없었던 것이다.
의사들은 개발된 약에 알레르기 반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을 생각해 새로운 약을 개발할 여유가 없었고 당연하게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약을 투여하는 것은 독살과 마찬가지였기에 그녀는 그녀의 면역력에 기대며 버텨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사실을 내게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다고.
".... 하, 하하하.... 하하하하!!!"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이 병실을 이 병원에서 나가야 한다는 강렬한 충동만이 머릿속을 강타했고 나에겐 그 충동에 저항할 이유도 정신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귓가에 울리는 담당의의 말소리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을 뿌리치고 미친 듯이 병원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헉.... 헉.... 헉...."
지나가는 사람과 그리고 병원의 각종 물품과 모서리에 부딪친 나는 감각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질감에 이마를 만져보니 끈적이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달렸고 마침내 병원 밖으로 나와 크게 숨을 들이키려던 찰나...
"다행이에요! 이제 곧 퇴원할 수 있는 거 맞죠?"
"그럼요. 이제 곧이 예요. 의사 선생님들이 잘 고쳐주셨는걸요."
"... 믿기지 않아요. 정말로 당신과 다시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오다니...!"
"저도요.... 당신에게 이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그리고 다시 함께할 기회가 와서 다행이에요 정말로."
병원의 환자로 보이는 사람과 그의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누는 대화소리가 귀에 박혔다. 저 환자는 분명 그녀와 처음 만날 적 그녀가 아니었다면 바뀐 병원의 규정상 거절되었어야 했던 환자였다.
"...... 아."
숨을 들이켜려 했지만 들이켜지지 않았다. 목이 막히고 질식하는듯한 기분에 무엇하나 하지 못하고 그저 고통에 차 꺽꺽거리는 소리만을 내뱉었다. 그 소리에 조금 떨어져 있던 그들이 내게로 와 걱정하며 내 상태를 살폈고 누군가 목을 조르는듯한 기분에 그 손길을 뿌리치고 무작정 달렸다.
'숨 쉬고 싶어.'
강렬한 충동에 발길이 닿는 대로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중간에 넘어지고 나무에 걸려 옷이 찢겼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 않고 한없이 달려.... 달려서 도달한 곳은
-솨아아
그 바다였다.
지독한 여름 내에 봄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그저 뜨거운 여름과 진득한 바다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리 와
환청임이 분명한 그 소리에 바보같이 걸음을 옮겼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기에 분명 뇌에 산소가 공급되고 있음에도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낸 그 환청을 따라 무작정 파도가 넘실대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어째서인지 진득하게 느껴지는 바닷물이 신발 위를 스쳤다 다시 멀어졌다. 넘실대는 파도가 험해 지금 바다로 들어간다면 분명 그 시체조차 찾지 못할 것을 알고 있지만 이곳에 들어가면 숨을 들이켤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래서 무작정 그곳으로 발을 옮겼다.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죽으면 내일 예정된 수술을 어찌하나 여기에 빠져 죽으면 그녀의 장례에는 누가 서나. 그런 생각들이 스쳐갔지만 그대로 덮쳐온 파도에 묻혀버렸다.
"..... 콜록!"
험한 파도 중 유난히 큰 것이 나를 덮쳐와 그 반동에 콜록거리며 들이킨 바닷물을 내뱉고 휘청거리던 중심을 바로잡았다.
'정말 죽는구나.'
이게 무슨 바보 같은 행동인지. 하지만 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도 이유는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갈망이 그것들을 파도와 함께 밀어버렸다.
울렁거리는 속은 토할 것 같지만 입을 열어봐야 나오는 것은 헛구역질뿐. 어느새 나도 모르게 흘린 뜨거운 눈물은 파도와 뜨겁고 찝찝한 바닷바람에 차갑게 식은 지 오래다. 정말로 죽을 것 같은데 정말로 죽고 싶어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가빈씨!
"....!"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그 잔음이 사라지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 이제는 아득해진 해변가를 바라본다.
"..... 해일 씨."
눈 돌린 해변가에 보이는 것은 만개한 벚꽃과 그 아래 서있는 두 남녀. 이내 내 감각이 바보가 되었는지 느껴지는 것은 뜨거운 여름 바다의 바닷바람도 짜고 넘실거리는 게 불쾌한 여름바다도 아닌 따뜻한 봄내음의 코끝을 스치고 찰랑이는 청량한 푸른빛의 바다는 무섭다가 아닌 시원하다는 느낌을 주는 봄과 바다였다. 그래서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여름은 봄을 죽이고 온 계절이구나
허용 되지 않는 감정이 몰아치며 헛구역질을 하기도 전에 내 시야에 담긴 건 칠흑 같은 검은 머리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밝은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와 그런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긴 나였다. 시선을 빼았긴 나의 표정은 너무나 바보 같아서 지금 하는 행동보다 바보 같은 그 표정에 나는 알아버리고 말았다.
'........ 아.'
그것을 그녀도 알았는지 그녀를 보는 해변가의 나에게는 시선한 줌 주지 않고 울렁이는 파도 속에 서있는 나에게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 웃음에 넘실대는 파도도 뜨거운 바닷바람도 식히지 못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내가...... 당신을 사랑했군요."
이것이 그저 찰나의 착각일지. 빠르게 뛰는 심장에 머리가 착각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려 했지만 그것이야 말로 이로 말할 수 없는 바보 같은 생각이라 조소에 가까운 웃음을 흘렸다. 왜 몰랐을까 아니 그저 외면했던 것뿐일까. 파도소리도 덮는 심장소리를 기억한다. 오직 그녀의 앞에서만 그리 난동 었는데 정말로 몰랐던 것일까? 그저 이 마음을 들키면 그녀가 나에게서 멀어져 버릴까 하는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이 마음을, 더는 외면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마음을 들키고 난 뒤 드는 의문은 한 가지.
'당신도 나를 사랑했나요?'
내 대답을 바라는 눈빛에 그녀는 그저 한 번 더 웃어주고는 해변가에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어느샌가 고막을 찢을듯한 파도소리도 귀가 시끄러운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파도가 높게 넘실거리지만 보이는 것은 오직 해변가의 나를 보고 있는 그녀뿐.
"그러니까 나랑 고치지 않을래요?"
너무나 익숙한 대사가 헤아릴 수 없는 거리를 넘어 내 귀에 꽂힌다.
그리 말한 그녀는 활짝 웃는다.
"마음의 병."
나는 어느샌가 그 봄으로 돌아와 있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내 볼을 스쳤고 넘실거리는 청량한 파도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나는 눈앞에서 활짝 웃는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윤해일이에요."
답할 수 없었다. 이미 그 병이 너무 깊어졌다고 그 병을 고쳐줄 당신이 없다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그녀는 어느샌가 나를 보고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보지 말아요. 지금 내 얼굴 엄청 흉할 텐데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룰 수 없는 약속에 그 한마디 말하는 것이 천근 같았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가 내게로 손을 뻗었다.
"가빈씨."
그녀가 나를 부른다.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모를 얼굴로 내 이름을 불렀다.
"병원으로 돌아가요. 나와 함께하면 안 돼요."
나에게로 손을 뻗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내게로 손을 뻗는 것이 아닌 내게로 뻗혀지는 손을 저지하고 있는 것이다.
"......."
그 손에 손을 뻗자 차가운 물에 손을 뻗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발.... 지금이라면 돌아갈 수 있어요. 돌아가요. 그곳으로."
이제 울듯 울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아마 내가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얼굴과도 같을 것이다.
"무리예요. 여기에 당신이 있는걸요."
그런 표정이 사랑스러워 보인다면 이미 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자포자기의 심정이 담긴 것 같은 조소를 뱉다가 당황을 머금고 있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워 보이는 당신의 얼굴에 아무래도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빈씨 제발.... 당신은 아직..."
맞닿은 손은 더욱 강렬히 내게로 뻗어지고 그녀는 괴롭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그것에 아랑곳 않고 그녀에게로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어쩌면 내가 그녀에게 끌어안 겨진지도 모를 일.
"..... 가빈씨?!.. 안...!!"
그리고 그녀에게 입 맞췄다.
내가 해일을 덮쳤고 어쩌면 해일이 나를 덮쳤다.
그 순간 울 것 같은 얼굴로 내게 마주 입 맞추던 그녀의 신형은 사라지고 오직 거대한 해일에 덮쳐진 나만이 남아있었다.
울렁이는 파도와 넘실대는 너울에 비릿하게 느껴지는 짠내가 박혀와 그대로 익사한다. 떠다니는 물고기의 사체가 파도에 부딪혀 해안가로 쓸려내려가고 하늘 위를 나는 갈매기는 차마 보기 싫은 것을 눈에 담았다는 듯 무언가 떨어뜨리며 바다에 닿지 않고 넘실대는 파도가 크게 쏟아 그 갈매기를 덮쳐 그 작은 생명 하나도 삼켜버린다. 구멍까지 들이찬 물에 이곳이 아래인가 위인가 심해인가 수면인가 공기 없어 호흡 못하여 막혀오는 숨에 울렁거림을 내뱉어 내뱉어 내뱉어 입안 가득 들이차는 물고기의 사체에 그대로 익사해 버린다.
여름바다에 빠져 깊은 심해에 익사해 버려 내게 허락된 것은 아주 작은 공깃방울 뿐이지만 들이킬뿐 그것으로 숨쉬지 않는다. 그 작은 공깃 방울 안에 세상을 담았고 봄을 담았기에 몰아치는 해일과 함께 그리고 사랑하는 그녀와 함께 그대로 심해로 떨어진다.
아... 나는 당신을 사랑한 게 아니에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하겠죠. 당신과 함께하는 심해는 그 수압이 나를 짓눌러 갈비뼈가 아스라지고 나의 심장을 찔러도 내게서 봄을 가져갈 수 없을 거예요. 나는 깊은 심해 속에 몰려오는 해일에서 죽어가겠습니다.
들이킨 작은 공깃방울은 숨이 되지 않고 동반자가 되어 그렇게 깊고 깊은 심해 속으로 몰아치는 해일에 몸을 맡겨.
아, 더 이상 숨이 막히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