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음악은 변칙적이지 않다. 언제나 악보에 쓰인 그대로.
편곡을 하던지 즉흥적으로 연주하던지 어차피 오선지 위에 오를 검은 점일 뿐이니.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그 악보는 읽는 법을 배운 사람이 나면 누구나 눈길 조금에 파악할 수 있다.
"..... ....."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더라.
오랜 시간을 들여도 그 속을 알 수 없고 드디어 알았다고 생각해도 갑자기 다른 모습을 보이니 도저히 사람이란 것은 짐작할 수가 없다. 물론 그것이 싫은 것은 아니나 지금은 그것이 답답하기 그지없다.
"....혜성아."
보일러를 돌려 온기가 느껴지는 거실과 너의, 아니 우리의 연습공간에서 느껴지는 한기의 사이 그곳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돌아오는 답변이 없을 것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언제나 그러했으니.
한껏 어질러진 방, 그곳에서 쓰러져 있는 너. 그 주위에 낭자한 잡다한 것은 네가 눈치채지 못했지만 억세게 연주해 전부터 그 올이 나갔다가 결국에는 처참하게 끊어져 버린 활털과 내리쳐지기라도 했는지 그리 멀쩡해 보이지 않는 활대. 그보다 너에게 가까운 것은 그 뚜껑이 열려 이리저리 약을 흩뿌린 약통과 우악스럽게 찢겨나간 상태로 비워진 약봉지.
그 중심의 너는 윤기 좋은 은발은 어디로 갔는지 푸석푸석한 머릿결과 거의 풀릴 듯 묶인 붉은 리본. 어설프게 묶인 붉은 리본과 같이 푸른 겨울 빛이 도는 은발에 파묻혀 있지만 희끗하게 보이는 붉어진 눈가와 그 위에 눈물자국을 남기고 곱게 감긴 눈. 언제나 차는 손목 보호대는 어디에 두었는지 그 옆에 놓인 팔목은 손목 보호대의 자국만을 남기고 힘없이 그곳에 놓여있다.
"...... ......"
이 울렁거리는 마음은 분노가 아닐 것이며 슬픔 또한 아닐 것이다. 네 비밀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너에 아픔을 알지 못했다는 나 자신의 대한 분노는, 그리고 그것을 혼자 감내했어야 했을 너를 생각하는 나의 슬픔은 여전히 이 한구석에 잔류하지만 이런 울렁거림일 리 없다는 것은 이미 머나먼 옛적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럼 이게 반복되는 이 모습에 대한 짜증과 실망이라 묻는다면 그 또한 그럴 리 없다. 이것은 네의 노력의 증거이기에 내가 이해할 수 없을지언정 폄하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그런 감정이 든다면 나조차 모르게 혹은 과거에 너를 보는 나에게로 보내버렸을 것이다.
그럼 이 감정은 무엇인가. 너에게로 발걸음을 옮겨 네 왼손을 살살 벌리곤 그 손에 쥐어져 있던 약들을 빼낸다. 바이올린은 기타와 달라 굳은살이 박히기 쉽지 않다. 더해 가장 두꺼운 네 번째 줄을 잡는 검지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얇고 고운 손끝에는 빠짐없이 박힌 굳은살과 그것이 찢어져 흐른 피가 자국을 남기며 건조하게 메마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팠을까. 물론 고통스러움이 느껴지겠지만 너는 그것에 신경 쓸 여력조차 없었는지 메마른 핏자국은 무엇의 관심도 받지 못한 듯하다.
메마른 피를 손가락으로 몇 번 문질러보지만 그 붉음이 묻어날 뿐 네 붉음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의미 없는 짓을 뒤로 붉은 리본과 같이 푸른빛의 은발에 파묻힌 네 붉은 눈가를 쓸어본다. 많이 울기라도 하였는지 메마른 피의 잔흔이 묻어도 그것을 알 수 없을 만큼 붉은 눈가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심정을 느낀다.
고개를 들어 창가를 바라보면 거세게 내리는 눈과 그 창가의 틈을 타고 들어오는 냉기에 힘없이 늘어진 너를 품에 안는다. 차갑다. 인간의 몸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찬기가 가득하다. 가볍다. 원래 이리도 가벼웠었던가,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몸의 무게와도 같게 느껴진다. 어느새 울렁거림보다 커진 두려움으로 너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는다, 네 심장 위에 귀를 가져다 댄다.
-....두근....두근...두근---
느껴지는 고동소리에 순간 힘을 풀려 놓칠뻔한 너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는다.
'왜 이렇게 됐더라...'
처음 동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저 좋았다. 너를 고쳐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실패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 실패하는 중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 어떤 표현을 쓰던 나는 너를 변화시키지 못하였다. 아니, 네 상태는 더 악화되고 말았다. 나날이 피폐해져 가는 너는 어쩌면 어째서 이리되었는지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동거가 시작되면서 우리의 인생에서 바뀐 것은 단 하나뿐이니까. 다만 내가 그것을 계속 부정해 온 것뿐이다.
" ..... ..... "
너를 안아 들어 너의 방으로 향한다. 깔끔하고 사람이 머물렀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적막함을 뚫고 네 방의 침대에 너를 눕힌다. 그리곤 방을 나가 보일러를 올리고 따뜻한 물에 손수건을 적셔 그것을 가져가 침대에 뉘어져 있는 너의 손 끝을 닦는다. 그리고 익숙한 테이핑으로 찢어진 손가락에 가하는 처치는, 나도 너와 같이 음악에 몸담은 사람이기에 그런 것일지라. 그에 그치지 않고 붉어진 눈가도 따뜻한 손수건의 온기로 닦아낸 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머리끈을 풀어 너의 옆에 가지런히 둔다. 붉은 기를 닦아내니 보이는 얼굴은 입술은 퍼석하게 말라있고 붉어진 눈가는 깊은 다크서클을 숨기고 있다.
"....왜."
저릿한 마음에 너의 메마른 입술을 엄지로 쓸어내린다. 이 통증은 분명 사랑일리라. 하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어째서 재능을 가진 네가 이리도 망가지는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나는 네가 아니었기에. 너도 내가 아니었기에. 이유를 찾으면 그뿐일지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랑하였음에도 그런 것일지라.
사랑하면 바꿀 수 있을 줄 알았고. 사랑하면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다만 너는 여전히 스스로를 아프게 하고 나는 여전히 너를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라면
들어 올려도 먼지하나 흘러내리지 않는 이불을 네 위에 잘 덮어준다. 혹여 찬바람이라도 들어갈까 몇 번이고 바람이 들어갈 곳을 눌러 너의 온기를 지킨다. 그리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네 이마에 입을 맞춘다. 차마 머리카락을 거둘 용기가 없어 이렇게나마 네게 온기를 넘긴다. 다시 내 온기가 너에게로 간다면 네가 더 힘들어질까 봐. 그러하지 않기를 바라기에.
그리고 방을 나선다. 방과 거실의 경계선에서 한참이나, 한참이나 너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할 나의 사치로운 시간이었을지라. 그리고 들어선 내 방. 인간미가 가득하고 찬기가 있지만 그리 심하지 않은 방. 구석에 밀어뒀던 케리어를 꺼내 사사로운 것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옷가지는 몇 개 챙기지 않는다. 당장 필요한 혹은 중요한 것들만을 몇 가지 챙긴다. 그렇기에 손에 들리는 것은 대부분 너와의 추억. 하지만 그것으로 캐리어가 반도 차오르지 않아 이내 케리어를 넣어두고 옷 주머니에 그것들을 넣는다. 옷주머니가 가득 차면 연습실로 향하여 그곳에 놓인 기타 케이스에 몇 가지를 넣은 뒤 그곳에서 앰플까지 챙겨 두 손을 채운 뒤에 내 기타와 너와의 추억이 들어있는 기타 케이스를 들에 메고 현관으로 향한다.
그런 나를 반겨주는 것은 이쪽으로 나가라는 듯 제 존재를 밝히는 형광들 뿐이라. 망설임은 길지 않고 그대로 굳게 닫힌 문을 연다. 현관문 너머에서 매섭게 내리는 눈에 그날도 이리 눈이 내렸던가. 그런 생각 따위를 하며 한걸음을 내딛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달라진 것은 오직 나의 존재뿐이라. 함께 하며 달라진 것은 아니, 달라지게 만든 것을 오롯 나의 존재이기에. 너를 그리 아프게 만든 것은 나일 지라. 바보 같은 나라도 알 수 있는 간단한 문제. 그 답을 찾았다면 시행하면 될 일이다.
" .... ....춥다."
예전에 책에서 보았던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말을, 나는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너를 사랑한다. 혜성아 네가 좋아. 하지만 그렇기에 너를 떠나려 해. 나는 너를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무리였나 봐. 네 남자친구가 되어서 뭐라도 제대로 해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네가 더 아파해.
"....추워."
혜성아.
차가운 밖으로, 현관문 너머로 두 번째 발걸음을 내딛는다.
....혜성아.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 같이 내리는 눈이 얼굴을 때린다.
이번에도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럼에도 나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해온 건 언제나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사랑이었으니까.
나의 뒤에 네가 있기에 기꺼이 그곳으로 밖으로 걸어간다.
이 또한 사랑이었다.
혹자는 말한다.
박자를 알려주는 메트로놈은 처음 연주를 시작할 때 그 감각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것 아니냐 말한다. 그 어떤 연주자도 제 연주를 선보일 때 메트로놈을 쓰지 않으니 사실상 숙련된 연주자라면 그런 것이 없이도 충분히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이라 주장하며, 더해 오히려 그 메트로놈 소리가 연주에 방해가 되는 소리라 주장한다. 반복해서 들리는 메트로놈을 따라가기에 오히려 연주자가 자신 있게 자신의 음악을 펼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 메트로놈 소리에 얽매여 역량을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혹은 말하지 않더라도 그리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틱– 틱– 틱– 틱– 틱–
메트로놈 소리에 눈을 뜨곤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렇게 시야에 든 것으로 대충 어림 짐작하니 이곳은 우리의 연습실일 것이다. 더해 검푸른 조명이 내려앉은듯한 우리의 연습실의 흐트러진 모습과 창가에서 내리쬐는 빛으로 눈에 보이게 떠다니는 작은 먼지들 더해 유일하게 빛이 드는 창가 너머 보이는 눈보라는 아침인지 밤인지 짐작할 수 조차 없게 한다. 물론 벽에 걸려 열심히 제 할 일을 하는 시계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시계를 어떻게 읽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이곳은 당연한 것이 무지 되는 공간.
-틱– 틱– 틱– 틱– 틱–
이곳에 있으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있곤 한다. 예를 들어 밥 먹을 시간이라던가, 현재의 시각, 중요한 약속 그런 잡다한 것들을 일상에서 너무 당연하게 행하는 모든 것들을 잊어버린다. 흔히 천재들의 몰두는 그런 것이라 하지만 재능 있는 모두가 천재는 아닐 것이고 나 역시 그리 할 테니 이건 그저 의지의 쇠약, 나약한 정신병이라 할 수 있는 것 밖에 더 되는가. 참으로 한심한 꼴이 아닐 수가 없다. 환청까지 들으며 일어난 것을 보니 이번에도 천재성 없이 천재들을 모방하는 꼴이나 보였겠구나 싶어 몸을 움직이며 생각해 잠긴다.
-틱– 틱– 틱– 틱– 틱–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언제나처럼, 언제까지나 그랬던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곤 바닥에, 정확히는 넘어져 내용물을 쏟아내고 있는 약통 옆에 널브러져 있어 차가운 바이올린의 목을 잡아 올려 네 개의 줄의 감촉을 테이핑 너머로 느낀다. 무엇이든 십 년을 하면 장인의 경지에 오른다 하였던가. 그렇다면 바이올린의 자세를 잡는 것 하나만큼은 나도 장인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 할 수 있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팽팽하게 조여 송진을 가득 먹인 활털을 피해 활대의 아래쪽을 엄지와 검지로 잡아 자연스레 나머지 손가락을 그 위로 덮는다. 그렇게 쥔 활대를 위로 올림과 동시에 바이올린을 왼쪽 어깨에 올리고 턱받침을 턱으로 지긋 누른 뒤 방황하는 활을 바이올린의 줄 위로 살포시 올린다면 완성이다.
-틱– 틱– 틱– 틱– 틱–
형편없는 실력과 다르게 보기엔 그럴듯한 자세.
손을 말아 쥐는 법을 잊었어도 활을 쥐는 법은 잊지 않고 젓가락을 잡는 법을 잊었어도 운지 자세는 잊지 않는다. 더해 고개를 끄덕이는 법을 잊었다 한들 턱받침을 누를 때 주는 힘을 잊지 않는다. 어머니께서 말하시길 완벽한 연주는 완벽한 자세로부터 나오니 이조차 하지 못하면 나에게 대체 무슨 가치가 있을까.
"후...."
아마 이곳에서 눈을 감기 전에도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삼키며 몇 번이고 상기하며 말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그리한다.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기에 하고 싶지 않다고 몸부림치는 무기력한 몸을 이끈다. 내겐 이것밖에 없으니까. 언제나 해왔던 바이올린 연주뿐이니까. 이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을지라도. 몸에 힘이 없어 주저앉고 싶을지라도. 더더욱 자세를 완벽히 한다. 의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완벽한 연주를 하기 위해서 단지 그뿐.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뿐. 그렇기에 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바이올린과 활을 잡은 양손에 힘을 준다. 바람이라도 툭 치고 간다면 놓칠만한 악력이지만 그럼에도 쥐어본다.
-틱– 틱– 틱– 틱– 틱–
이내 숨을 들이쉬고
" "
멈춘다.
-틱– 틱– 틱– 틱– 틱–
-틱– 틱– 틱– 틱– 틱–
-틱– 틱– 틱– 틱– 틱–
적막 속의 메트로놈 소리.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유일한 이정표인 그 소리를 따라 떨리는 손에 힘을 주어 힘껏 움직여 본다.
꿈결에도 잊지 못할 운지. 도돌이표라고 말하지 않고도 반복하는 부분까지 완벽하게 나열할 수 있을 정도로 외운 악보. 정확한 각도에서 활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오른손.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할 수 있는 정확한 힘조절과 부끄럼 없는 기교. 한없이 완벽에 가까운 것들이지만
-끼이이이이이익—!!!
찢어질듯한 바이올린 소리.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소음.
-틱– 틱– 틱– 틱– 틱–
"....아."
들리는 것은 그저 메트로놈 소리.
-틱– 틱– 틱– 틱– 틱–
혹자가 말하는 쓸모없고 오히려 연주에 방해가 된다는 메트로놈 소리만이 귓가에 울린다. 규칙적이고 반복적이어 오히려 연주자의 연주를 압박한다 말하는 메트로놈의 정확한 박자.
"아아...."
-틱– 틱– 틱– 틱– 틱–
힘겹게 쥐고 있던 바이올린과 활을 내던진다. 방음처리가 되어있는 만큼 그 소리가 크게 울릴 것이 분명하건만 들리지 않는다. 머릿속에 울리는 것은 그저 메트로놈 소리. 언제까지나 들릴 것만 같았던 소리. 그렇기에 고개를 돌려 피아노 위에 메트로놈을 바라본다. 미동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침을 가진 메트로놈을 바라본다. 그와 동시에 귓가에 울리던 메트로놈 소리가 흐려진다.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환청이 흐려진다.
-틱– 틱– 딕– 틱– 팃–
비어버린 손으로 양쪽 귀를 감싸 쥔다. 그 과정에서 몇 가닥의 머리가 같이 잡혀 들어왔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오히려 나가는 소리를 방해할 테니 좋은 일이다. 귀를 잡으면 아까 손에 힘이 없어 악력이 부족해 악기를 놓칠 뻔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악력이 귀를 쥐어짠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대로 귀가 뜯어져도 좋으니 부디 이 소리를 놓치지 않기를 소원한다.
"...가지마."
연주자는 메트로놈 없이 연주할 수 없으니까.
메트로놈이 연주자를 방해한다 말하는 혹자는 아마 한 번도 연주를 해본 적도 연주자의 마음을 이해하려 한 적도 없을 것이다. 혹은 그러하려 했거든 전혀 그러하지 못한 이 일지라.
-틱– 팃– 팃–.. 티– 티잇–.... ... 티잇–.... .... ....
"가지마...!!! 가지 말라고...!!!"
연주자의 귀에는 항상 메트로놈 소리가 맴돈다. 메트로놈을 사용하지 않는 연주자는 이미 그 메트로놈 소리가 숨 쉬듯 당연히 울리는 것일 뿐이라. 메트로놈 소리는 언제나 연주와 함께 한다. 연주자의 안에서 연주자는 그 메트로놈 소리와 함께 합주한다. 그렇기에 음악은 외로운 것이 아니다. 언제나 누군가 함께 해주는 것이라. 비록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항상 행복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혼자 연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연주자에게 있어 메트로놈은 필요하다 필요치 않다가 아닌 그저 당연한 연주의 일부일지니 그렇기에 그것이 없는 연주를 주장하는 혹자를 이해하려 하지 않으며 이해할 수도 없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 ...."
마치 우리의 사랑처럼.
너무나도 당연하였고 그저 사랑이었기에.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은 그저 좋아함이었기에.
네가 없이도 이 사랑이 성립된다 생각하는 너를 이해할 수 없다. 네가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랑이기에. 네가 있어야만 이것이 우리의 사랑이기에. 나는 떠나간 네가 이해되지 않아. 어째서 나를 떠나간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사랑이기에 너와 내가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나의 사랑이며 너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이 아니다. 너와 나의 사랑만이 우리의 사랑이다. 그렇기에 네 행동을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주호야.... 주호야....."
그 전의 기억조차 없는 그날, 내 발로 걸어 들어왔을 리 없는데도 이불까지 꼼꼼히 덮인 채로 눈을 뜬곳은 내 방이었다. 네가 옮겨다준 것일까 하여 미안한 마음에 너를 찾으러 일어나며 멀지 않은 곳에 놓인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려 했던 그때, 너에게서 보내진 문자 한 통이 얼마나 불안했는지 너는 알까. 나의 마음을 이해할까. 아니, 아니... 그럴 리 없다. 이해하였다면 알고 있다면 그럴 리 없으니까.
".....주호야."
잠시 본가에 내려가 있겠다는 하지만 그뿐이었다면 괜찮았을 문자. 중요한 것은 나와 거리를 두기로 한 너의 선택이라. 무엇이 그리도 미안한지 문자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사과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너의 말들. 네가 있기에 내가 괴로울 리 없는데 너는 어찌 그리 생각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보고 싶어."
네가 너무 보고 싶었다.
슬픔도 분노도 배신감도 그 무엇보다도 네가 보고 싶었다. 너의 웃는 얼굴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네 목소리가, 매일 아침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너무나도 그리워 이유 따윈 상관없이 이해할 수도 없이 그저 한없이 네가 보고 싶었다. 그리웠다. 굳이 이유를 붙인다면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그 순간 자리를 박차며 움직인다. 바닥에 서린 한기가 느껴지니 양말을 신었는지 의심이 되지만 움직이는 발에 시선을 두지 않고 발에 치인, 어젯밤에 몇 번이고 집어삼킨 약도 상관 않고 제대로 잠기지도 않은 문에 손을 뻗어 무게를 싣는다. 그 이후의 일은 당연하게도 문을 밀고 복도로 나가는 것 하지만 그것을 시행하기도 전, 잠겨있지 않아 막힘 없이 열리는 문에 그대로 고꾸라지고 만다.
-우당탕!!
아프다. 쓰라린가? 어지럽다.
그러니까 주호야,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하지만 일어난다.
나도 너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몸을 일으킬 의지 따윈 없다. 아픔을 느끼며 아픔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너무나도 모순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마치 우리의 사랑과도 같아 그렇게 앞으로 다리를 뻗고 팔을 뻗는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밖으로 나가 너를 찾으며 지나칠 많은 사람들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런 것이 우리의 사랑이라면
그럼에도 현관문에 가까워지자 그 틈 사이로 들어오는 시린 찬기와 두려움에 몸이 움츠러드는 것에도 굴하지 않고 뻗을 손을 굽히지 않는다. 그저 더 절박하게 손을 뻗어본다. 굳게 닫힌 현관문에 닿도록, 그리고 그 밖으로 한걸음을 내딛고 너에게 닿도록.
그것으로 좋아.
어느새 바이올린의 이명은 들리지 않는다. 그저 적막. 메트로놈의 존재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걸음을 내딛는다. 모순적이고 이해불가능한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의 사랑이며 그렇기에 나아가는 나는 마침내 현관문에 도달했다.
이해받지 못해도, 이해할 수 없어도 네가 좋아.
손을 뻗어 잡은 문고리를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아 손이 얼어있었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지만 그조차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 그저 문고리를 잡고 그것을 돌려 열려 한 순간.
-철컥
…문이 열렸다.
“....혜성아?”
그리고 네가 보인다.
“너 상태가 말이… …?!”
뛰어오르듯 내딛은 한걸음에 너와의 거리를 좁히고 팔을 뻗어 너를 잡는다. 어디를 잡았는지 내 발이 지금 어디 있는지 심지어 지금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까지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너의 숨결이 있는 곳에 내 숨결을 겹친다. 제대로 겹쳐졌나도 알 수 없이 그저 절박하게. 보고 싶었을 뿐이라. 사랑했을 뿐이라.
““.....””
제대로 겹치지 못했던 걸까. 나를 잡는 손길과 함께 너의 얼굴이 기울어 숨을 겹친다. 다정하고 차가운 숨결이 겹쳐진다. 마스크도 하지 않고 이 날씨에 목이라도 상하려면 어찌하려 그러는지. 보고 싶다는 마음이 해소되자마자 너의 걱정부터 마음에 서린다.
너무나도 다르기에
하지만 이내 괜한 걱정이라 말하듯 나의 숨이 겹쳐져 얼음장 같았던 너의 숨이 따뜻해진다. 손에서 느껴지는 너의 체온이, 손등을 때리는 눈보라가 너무나도 차갑지만.
이번에도 이해할 수 없지만
네가 닿은 모든 곳이 홧홧하게 달아올라 그 자체로도 기분 좋은 온기가 서린다.
그저 네가 좋기에
더 이상 메트로놈 소리도 바이올린의 비명도 들리지 않고, 자기혐오도 이해할 수 없어 괴로웠던 마음도 사라졌다.
네가 나를 좋아하기에
그저 너의 존재만으로도 아까까지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가시고 따뜻한 행복감이 몸을 데우니.
이 역시 사랑이었다.
-둥....둥....둥...
앰플 없는 일렉기타 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많은 이들이 착각하지만 일렉기타의 기계음과 울림은 앰플의 몫이라 앰플 없는 일렉기타는 그저 울림통 없는 통기타와 다르지 않다. 통기타보다도 못한 울림에 기계음까지 없어 밋밋한 소리는 방음벽이 없는 곳에서 연습하기엔 더없이 좋은 조건이라 그 때문에 일렉기타를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는 잡다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둥.... .....
그런 잡생각을 떨쳐내지 않았음에도 무리 없이 완주한 곡은 연주하기 어렵지 않은 악보이나 몇 번을 반복해도 기타와는 그리 잘 맞지 않는 곡이다. 비단 방금 연주한 소리가 울림통 없는 통기타와 같은 소리이기 때문이 아닌 정말로 기타로 연주하기엔 그리 적합하지 않은 곡이다. 그런 곡을 왜 몇 번이고 연주하고 있는지는 스스로도 의문이라.
"하아, 그러게 이걸 왜 가져와선."
작게 한숨을 내쉬며 악보 받침대에 올려져 있는 낡은 악보를 집어든다. 좋은 종이를 사용한 듯 보임에도 조금 누렇게 물든 종이는 그 자체로 세월을 증명한다. 완전한 문외한이 연주할 만한 곡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신동이라 평가받았던 너의 수준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쉬운 곡. 혜성이의 아버지께서 작곡한 악보가 내 손에 들려 있다.
그 연유를 묻는다면 너와의 추억이 담긴 것들을 마구잡이로 넣을 때 무심코 집어넣어 딸려왔기 때문이라, 흥미가 생겨 몇 번의 연습 후에 가볍게 연주해 봤지만 역시라면 역시, 척 보기에도 어렵지 않은 난이도인 것도 기타에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 곡이란 것도 예상했던 그대로다.
"....왜지."
예상했던 그대로라 더욱 의문이 드는 것은 아까도 생각했던 것처럼 너무나도 쉬운 악보. 아무리 어렸음에도 신동이라고 불렸던 너에게도 쉬울 것이 틀림없는 악보. 이럴 줄 알았으면 너의 과거사를 물어볼 것을. 일부로 기피했던 부분이라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어 한숨이 나온다.
이내 복잡한 마음을 흐트러 뜨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에 풀썩 누우니 보이는 것은 빛으로 인해 조금 투명해진 누런 악보이다. 왜 이런 잡다한 것에서 마음을 떼어내지 못하는 것인가 한다면 도저히 가시지가 않는 너의 생각 때문이라. 무엇을 해도 네가 눈앞에 아른거리니 차라리 너의 생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기에 몇 시간 전부터 붙잡고 있던 악보는 아무리 시도해 봐도 썩 마음에 드는 연주가 나오지 않아 막막할 뿐이다.
'보고 싶다.'
그렇기에 몇 번이고 연주를 반복하다 보면 연주에 집중할 수 있을 것만 같았으나 아무리 연주해도 떠오르는 건 네 생각뿐이라 심란한 마음에 얼굴 위를 악보로 덮고 너를 생각해 본다. 원래 이 악보를 연주했어야 했던 너는 기사에서 본 만큼 아주 어렸을 것이고 성격은... 어쩌면 밝고 개구쟁이였을지도 모르지, 너는 좀처럼 옛날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니까. 더해 연주는 지금과는 달리 조금은 미숙한 부분도 있었을테고. ....신동이라 불렸던 너의 연주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는 평은 잠시 밀어두도록 하자. 그렇게 그려낸 것은 어렸던 내가 질투했던 한 소년이다. 너무나도 작고 여리며 어쩌면 장난꾸러기였을지도 소년....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튼 아버지에게 악보를 받았으나 어머니의 반대로 한 번도 연주하지 못했던 소년. 그런 소년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악보는 어떤 악보일까.
"음..... 아, 모르겠다!! 모르겠다고오!!"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마음에 옆으로 풀썩 눕고 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아도 나는 너의 아버지가 아니니까, 그 시절의 너를 본 것이 아니니까 이해할 수 없다. 그 시절 작은 손과 약한 악력을 가진 너라도 너무나도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악보. 선물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한 감이... .... ....
"....작은?"
그 생각과 동시에 다리를 높게 들어 그 반동으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옆에 놓아둔 기타를 잡아 황급히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는 다시 악보를 악보 받침대에 올리고 유심히 보다가 아주 약한 악력과 미약한 힘으로 악보를 따라 연주하기 시작한다.
-♩♪♬♪ ♩ ♩ ♬ ♪ ♪ ♩ ♪ ♬~
약한 힘만큼이나 여린 멜로디가 귓가를 스쳐간다. 원래 목적과는 완전히 다를 이런 앰플도 없는 일렉기타라 할지라도 듣기 좋게 연주되는 음악. 달라진 것은 기교도 악보도 악기도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어린아이가 낼 수 있을만한 악력. 단지 그뿐인데도 어느샌가 듣기 좋은 연주가 된다.
"....."
여전히 왜 이런 곡을 썼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것을 고려할 줄 아는 분이셨다면 좀 더 너에게 맞는 곡을 쓸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공통점으로 나는 너의 아버지와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어린 네가 연주하는 이 곡을 떠올릴 수 있다. 그저 너를 생각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마 그 이유의 깊은 곳엔 너를 사랑한다는 같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돌아갈까."
아직도 나 때문에 네가 괴롭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분명 나와 함께 살지 않았던 너는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무기력하고 자신을 힘들게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나 때문일지라도 우리는 내가 그리는 좀 더 행복한 너에게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서로를 사랑한다는 그 하나의 겹침으로 우리는 같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의 아버지와 같은 것을 떠올린 것처럼. 오히려 너와는 아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을 테니 더욱 완벽하게 더욱 멋지게 같은 것을,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너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네게 이 연주를 들려주는 것. 네게 알려주기 위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같은 것을 그리고 같은 것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알려주기 위해. 그렇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리해 둔 것들을 다시 기타 케이스와 주머니에 넣고 앰플과 기타를 챙겨 집으로 향한다. 우리 집으로. 차가운 눈보라가 몰아침에도 거침없이 다시 그곳으로 향한다. 네게 이 연주를 들려줘야 하니까.
"....."
막상 문 앞에 서니 두려움이 일렁인다. 어쩌면 아주 괜찮은 네가 이 안에 있을까 봐. 정말로 나 때문에 네가 그리 힘들어했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정말로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바뀌면 되겠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바뀌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정말로 내가 잘못된 것이라면 까짓 껏 바꿔 보이리라. 그것이 너와 떨어져 있는 것보다 어렵지 않으니까. 너와 떨어져 있던, 네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너를 보지 못했던 그 며칠간이 너무나 끔찍했었기에 그 무엇도 이것보다 어렵진 않으리라.
-철컥
그렇게 생각하며 차가운 문고리를 돌린 순간 문 앞에 서있는 너를 마주했다. 정확히는 문을 열려고 하는 것만 같은, 길게 늘어진 다크서클에 창백한 얼굴과 입술 더해 제대로 먹지 않았는지 며칠사이에 더욱 얇상해지고 내가 해준 테이핑을 그대로 둔 너를 마주했다.
“....혜성아?”
그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말랐는지, 얼굴은 또 왜 이렇게 창백하고 잠은 제대로 자고 밥은 제대로 챙겨 먹은 것인지. 이로 말할 수 없는 통증에 울고 싶은 기분까지 들어 원치 않게 인상을 찌푸리며 네게 손을 뻗었다.
“너 상태가 말이… …?!”
다만 그보다 먼저 너의 입술이 내 입술 위에 겹쳐졌다. 얼마나 급박했는지 한쪽으로 치우쳐 윗입술은 반정도밖에 맞닿지 못한 그런 입맞춤. 그런 네게 뻗은 손으로 너의 뒤통수를 감싸 얼굴을 기울여 너의 입술과 완전히 겹쳐지게 하여 입 맞춘다.
““.....””
한없이 창백했건만 그것을 잊을 정도로 따뜻한 숨결이 겹쳐진다. 부정적인 생각은 모두 사라지고 그저 너와의 재회에 대한 행복감만이 마음 깊은 곳부터 서려온다.
그렇게 한참을, 너의 뒤통수를 감싼 손등이 추위에 아픔을 느낄 때까지 깊게 입맞춤을 나누곤 이내 정신을 차려 겉옷을 벗지도 않고 너의 손을 잡아 거실로 이끈다. 이웃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면 연습실이 맞춤이지만 어린 네가 아버지께 연습한 곡을 들려주는 것은 연습실이 아닌 거실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너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이웃들에겐.... 나중에 사과하면 되지 않을까....? 너에게 이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여기 앉아."
그렇게 영문을 모르겠다는 너를 소파에 앉히고 대충 작은 의자 하나를 끌고 와 그곳에 앉아 비슷하지만 조금 낮은 눈높이로 너를 바라본다. 그리곤 꺼내는 건 악보가 아닌 기타, 악보는 여러 번의 연습 끝에 그리 어렵지 않게 외울 수 있었다. 애초에 어린 네게도 쉽다고 느껴질 악보였으니까 외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저기 주호야. 이게 대체...."
"그러니까... 음, 일단.... 일단 들어줘."
설명을 듣지 못해 알 수 없어하는 너에게 한마디 말보다 이것을 먼저 들려주고 싶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너를 바라본다. 그러자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지만 그럼에도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너를 보며 왜인지 눈물이 핑 도는 기분을 느끼며 줄이 끊어지지 않게 풀었던 기타를 조율하고 크게 숨을 들이쉰 뒤에 너를 바라보며 아까와 같이 마치 어린아이의 악력같이 약한 힘으로 앰플을 연결하지 않은 일렉기타를 연주해 간다.
-♩♪♬♪ ♩ ♩ ♬ ♪ ♪ ♩ ♪ ♬~
처음 연주를 들었을 때 고개를 갸웃하던 너는 점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변하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며 미소 짓는다.
- ♬♪ ♩ ♪ ♬ ♪ ♪ ♪ ♩ ♪ ♩ ♩ ♬ ~
이어 하염없이 흐르는 너의 눈물은 연주가 끝에 다다를수록 점점 멎어간다.
-♬ ♪ ♪ ♩ ♪~.... ♪~.... ♬~~~.....
연주가 끝나자 너의 미소가 어느샌가 흐르는 눈물보다 짙어져 있었다.
"....뭐야 그거. 바보 같아 진짜."
연주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나서야 물기 가득한 목소리를 갈무리하며 웃어 보이는 너를 보자 네게 무언가를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떠오르는 그대로 네게 전한다.
"나는 아직도 네가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우리는 서로 다른 점이 너무 많아서 아마 평생토록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 말에 너는 우는지 웃는지 모를 미소를 띠며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아까와는 다른 눈빛, 체념인 건지 아니면 슬픔인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너의 마음.
"하지만 혜성아. 나는 여전히 널 좋아할 거야."
완전히 같을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저 하나의 공통점에
사랑이라는 공통점에
"좋아해. 그리고 미안, 앞으로는 떠나지 않을게."
우린 같은 미래를 그릴 수 있을 테니.
"..... .....나도."
그렇기에 네가 행복하게 웃으니
"나도 네가 좋아 주호야."
나 역시 행복하게 웃는다.
"다음엔 직접 연주하는 거 들려줘."
"...우리 아빠 노래니까?"
기타를 놓고 너의 옆에 앉는다. 한마디의 말보다 마주 잡은 손으로, 한마디의 말보다 마주 웃는 얼굴로.
너와 입 맞춘다.
““.....””
혜성아 사실 원래 네게 크리스마스에 고백하고 싶었어.
그래서 조금 아쉬웠던 것 같아.
"....이젠 어디 가지 마."
하지만 이젠 상관없어.
"이젠 어디 가라고 해도 안 갈 거야~"
우리가 함께할 크리스마스는 아주 많을 테니까.
"...진짜?"
"당연하지!"
창밖에서 매섭게 눈보라가 치는 겨울 너와 거실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고 웃는다.
그리고 아마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언제까지나 그러할 테니.
언제나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