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커미션

柳暗花明

샌드위치 커미 2024. 3. 29. 22:58

柳暗花明류암화명

처음은 발전의 여지가 없으나 나중에는 희망이 나타난다.

 

기나긴 겨울은 결국 지나갈 꽃샘추위에 불과하기에


마음이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한때 평생을 사랑하겠다 많은 이들의 앞에서 맹세하며 검은 머리가 희게 세는 것을 함께 할 것을 꿈꿨던 이들은 서로를 비난하며 깎아내리고 지워지지 않을 흉을 감수하고 서로의 이름을 자신의 옆자리에서 지워버린다거나. 평생을 지켜주겠다고 맹세하며 오직 상대를 위한 곡을 만들어 선물해 주곤 훌쩍 떠나버린다거나. 이런 가변적인 것이 마음이란 것이라, 도저히 짐작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고 뜻대로 할 수도 없어 심지어 자신의 마음 또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찌 타인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어찌 아버지, 당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어머니를 사랑했으면서, 평생을 맹세했으면서 결국 어머니와 이별을 고한 그 마음을,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했으면서 그 이후로 한 번도 만나러 오지 않은 그 마음을 나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그런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아버지. 그렇게 결국 차갑디 차가운 그저 죽었다는 한마디로 종지부를 찍은 우리의 인연은 추억한다면 짧고 강렬한 비극이 될 것이다. 행복하지 않았고 찬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기에 더욱 비극적인 아버지와의 인연은, 짐작할 수 없는 그 마음은 지울 수 없고 숨길 수 없는 상처가 되고 말았다. 이런 끝을 원하지 않았던 사랑은 결국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아 끝나고 만 것이다.

 

나의 마음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았음에도 상처받아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었다. 여리고 싶지 않았지만 한없이 여렸다.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상처가 되어 나를 상처투성이로 만들어버렸다. 마음에 상처 또한 손가락에 굳게 박힌 굳은살처럼 원치 않음에도 깊이 박혀 결코 지워지지 않는 것이라 나는 이 부끄러운 것들을 숨기기 급급했다. 도려낼 수 있다면 살을 주어서라도 기꺼이 그리 했겠지만 도려내는 것조차 뜻대로 할 수 없었다. 몇 번을 도려내도 다시 돌아와 내 마음 깊은 곳에 다시 자리를 잡아 더욱 깊은 상처로 변하고 말았다.

 

혼자서 연습할 때도 귓가에 맴도는 어머니의 다시 한번이라는 말이, 학교로 가면 들리는 수군거리는 소리에 그 근원이 내가 아닐지도 모름에도 과거의 조롱이 떠올라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를 벗어나는 나의 한심함이, 동시에 귓가에 맴돌기 시작하는 그 조롱 섞인 목소리들이 뜻하지 않았음에도 모두 나의 상처가 되어버려 스스로의 마음을 볼 수 없음에도 분명 상처 투성이일 나의 마음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무어가 그리 연약한지 한숨 하나에 날아가 짓이겨지는 마음이 참으로 원망스러우면서도 한심했다.

 

고작 몇 마디의 말들에 타고 올라오는 소름 돋는 기분은 작은 괴물이 다리를 타고 올라와 내 귓가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으며 심장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쿵쾅이며 숨은 내쉴 수도 들이쉴 수도 없이 턱 막혀 그저 꺽꺽 거리는 바람 빠진 소리를 내는 것이 다였다. 손은 밤을 새우며 어머니께 보일 곡을 연습했을 때보다 전율하며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선다는 개념까지 잊어버린 것 같은 그런 바보 같은 나의 모습을, 나를 그리 만든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그렇기에 부끄러웠다. 나의 마음이, 그런 내가 부끄러웠다.

 

사람을 피하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을까. 타인이 볼 내 마음이 한없이 부끄러워 피하고 숨고 외면했다. 그러며 겉모습은 멀쩡한 척 괜찮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그리 하여 부끄러운 모습에서 시선을 돌리게 하였다. 도저히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사랑할 수 없는 나를 내보이는 짓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말했다. 흉터는 훈장이며 상처는 도망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그렇기에 자랑스러워해도 좋은 것이라고. 그건 참으로 웃기는 소리였다. 나는 한 번도 내 손에 만연한 굳은살과 물집을 자랑스러워해 본 적이 없으니까. 이것은 그저 나의 무능함의 증거일 뿐이다. 이리 연습을 거듭해야 할 만큼 형편없는 실력을 가졌다는 증거.

 

다행스러운 것은 형편없는 실력임에도 어머니의 뜻대로 참가한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으로 나를 그리 한심한 게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일까. 그것도 그저 짐작에 불과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안도를 느꼈다. 그렇기에 어머니의 말에 따라 더욱 열심히 바이올린을 연주해 나갔다. 고작 물집과 굳은살 따위가 어머니를 실망시킬 이유가 되지 못했으며 손목 보호대를 찬 나의 연약한 손목이 부끄러울 뿐 그것이 나 같은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포기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의 의지에 상관없이 손을 굳게 해 연습을 방해하는 겨울이 싫어졌다.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야 하는 부분에서 추위에 굳은 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 감각이, 고통조차 아득하게 만드는 그 추위가 그조차 할 수 없다며 나에게 내려지는 사형선고와 같아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계절이었다. 반항이라도 하듯 오기를 가지고 연주해 가면 손가락이 찢어져 테이핑을 하며 연습을 쉬어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뿐만인가, 손가락이 찢어지지 않았다 하여도 추위로 느려진 손가락으론 한나절을 꼬박 연습해야 그날의 연습을 끝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겨울은 나를 죽이는 계절, 모든 것을 앗아가는 계절, 좋아질 리 없는 그 계절. 허나 세상에 영원한 마음은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네가 내게로 왔다.

 

"저기... 도와줄까?"

 

네가 처음 말을 걸어줬던 그때만 해도 너는 그저 목소리가 큰 같은 반 친구였다. 나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도 없어 보여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피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너와 나눈 대화의 첫마디가 나를 향한 호의가 가득한 말이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어버렸고 너의 도움으로 결국 열쇠고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간사한 내 마음은 그 순간만큼은 너에 대한 껄끄러움이 씻은 듯 사라지고 고마움만 가득해 연락처를 교환하자는 너의 말에 긍정적인 말을 내뱉게 되었다. 어쩌면 그건 내가 한 일중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 일을 계기로 너와 친해질 수 있게 되으니까.

 

"이번에 연습한다던 곡 말이야..."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음악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한번 말이 트이니 친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겨울방학을 맞았고 그 겨울 방학 동안 우리는 항상 함께였다. 그리고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은 새롭고 즐거운 것의 연속이었다. 나는 내가 그리 웃을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을 정도니까. 너의 그렇게 웃을 수도 있냐는 물음에 누구보다 적극 동의했던 사람은 나라고 할 수 있다. 너와 함께하면 모든 것이 얼어붙은 추운 겨울 속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라는 얼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뜻하게 녹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어찌 겨울을 싫어할 수 있을까. 그해 겨울의 모든 것이 너였는데. 새로웠던 것도, 즐거웠던 것도, 행복했던 것도, 그 모든 것이 너였는데 어찌 겨울이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이때만큼은 간사한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감정에 취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원래도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마음이 이런 감정을 알아버린다면 나의 뜻까지 이끌어가 버리는 것이라. 평생을 맹세하고 함께 흰머리가 되는 것을 기다리자는 약속을 어찌 망설일 수 있을까. 언젠가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행복과 기쁨에 밀려 저 멀리로 사라진 후였다. 그렇기에 가장 행복했던 그날 나는 가장 두려웠다.

 

"좋아해... 좋아해, 혜성아."

 

니 겨울이 다시 혐오스러웠던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까. 어쩌면 이 겨울이 끝나지 않을까. 너무나 행복한 지금이, 꿈과 같은 현재가 과거가 되고 시간이 지나 결국 이 행복만큼의 비극이 되는 게 아닐까. 너와 함께라면 따뜻하게만 보낼 수 있을 것 같던 겨울이 두려워졌다. 그렇게 불현듯 우리의 행복이 영원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겨울을 싫어할 줄 알았던 내가 너와 함께하는 겨울을 사랑하게 된 것처럼. 영원을 맹세했던 부모님의 사랑이 변해 결국 갈라선 것처럼. 영원히 서로를 사랑할 것만 같은 우리의 마음이 변하면 어쩔까 겁이 났다. 영원하길 바라지만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나도.... 나도 좋아해, 좋아해 주호야."

 

그렇게 가장 행복했던 동시에 가장 불행했던 그 겨울날. 역시 겨울은 사랑할 수 없는 계절이었다. 겨울은 나의 모든 것을 불안하게 했으니까. 길어지는 연습 시간에 어머니를 실망시키는 것은 아닐까, 찢어진 손가락에 연습을 하지 못하는 동안 쌓아온 실력을 모두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너와 함께 하는 이 행복이 영원하지 않은 마음은 아닐까 하는 모든 것이 나에게는 겨울이라. 기껏 사랑하게 된 계절은 다시 뼛속 깊이 스며들어 나를 추위에 떨게 하고 마음을 멀어지게 했다. 그렇게 다시 겨울이 두려워졌다.

 

너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더없이 행복하면서도 없이 두려운 것이 되었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하여 너를 붙잡아보고자 함께 살아 거리를 가깝게 하기도 하였다. 너의 마음이 떠날까 무서워 거리라도 가깝게 해 보자는 나의 필사적인 노력이 우스우면서도 이리도 너를 믿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혐오스러웠고 가증스러웠다. 행복하면서 점점 나 자신이 싫어져 나의 유일한 가치라고 볼 수 있는 바이올린에 시간을 쏟았다. 연습 중에 그대로 잠들 정도로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오직 유일한 가치를 쌓아가기 위해 연주하고 또 연주했다. 그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일까.

 

"왜... 어째서.... 왜.... 왜...? 왜?"

 

어느 순간 손가락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무얼 연주해도 마음에 차지 않고 그저 소음과 같이 들리게 되었다. 이조차 하지 못하는 내게 대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음악조차 못하는 나에게 마음이 떨어진 네가 훌쩍 떠나버리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 한없이 부족해서 더욱더 바이올린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게 내 나름대로의 사랑이었으리라. 하지만 네겐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그리고 나를 떠났던 것처럼 네가 나를 떠났으니까.

 

"주호야... 주호야..."

 

네가 나에게 진절머리가 났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가 싫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너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이 떠난 것과 같이 떠났기에 나를 떠난 줄만 알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그렇게 나는 따뜻했던 겨울을 영원히 잃고 다시 춥디 추운 그 겨울날로 돌아가게 되는 줄만 알았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던 그 추운 겨울날로.

 

"....주호야."

 

두 번째라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어째서인지 나의 마음은 더욱 간절해져만 갔다. 포기할 수 없었다. 납득하고 행복을 빌어줄 수 없었다. 너를 사랑했으며 나의 사랑은 그저 나 혼자만의 납득이며 만족이었지만 우리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는 다른 사랑인지라 우리의 사랑에는 서로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무언가를 간절히 열망한 순간이었고.

 

"보고 싶어."

 

처음으로 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마음에 기꺼이 따르게 된 순간이었다. 너를 만나기 위해, 너를 사랑하기 위해 내달렸던 겨울날의 추위는 지난겨울과는 달랐다. 지난겨울 동안 나는 추위가 두려워 그 추위를 피하기 위해 한없이 겨울을 내달렸건만 너를 만나러 가기 위한 이번 겨울은 그저 추위를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 꽃으로 향하기 위한 발걸음인 것이다.

 

"좋아해."

 

그간 너와 함께 한 순간들이 겨울인 줄 알았건만, 내가 겨울을 사랑하게 된 줄 알았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너와 함께 했던 나날들의 나의 두려움과 불안함은 겨울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찾아오는 봄을 시기하여 막아선 지나갈 꽃샘추위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그 꽃샘추위가 봄이 찾아올 증거라 그 추위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시리고 날 아프게 하여도 찾아올 봄을 생각하며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 ♩ ♬ ♪ ♪ ♩ ♪ ♬~

 

더해 네 마음이 달라질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바보 같은 걱정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고 언젠가 모든 것은 변화한다. 나를 위해 만든 아버지의 노래가 너의 기타 연주에 의해 편곡된 것처럼 영원할 것만 같았던 노래는 다른 방식으로 연주되고 있으며 그건 마음과도 같다. 편곡되어도 여전히 나를 위한 음악인 것처럼 다른 방식으로 변하여도 여전히 그 마음이란 것이다. 변해도 상관없다.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여전히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조금 변한 것으로 그간의 마음이 사라지는 것도 사랑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영원할 수는 없으나 완전히 다른 것이 되지 않아도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었기에 나는 언젠가 올 봄의 꽃샘추위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나에게 나는 싫은 사람이며 추위는 내게 끔찍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봄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고 꽃샘추위를 달갑게 여기는 사람일 것이다. 모든 것은 바뀐다. 아무리 바뀌지 못할 것만 같아도 모든 것은 바뀌기 마련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게 어떻게 바뀔 것이냐 이기에.

 

주호야, 나는 네 노력에도 아마 나를 사랑하기에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 거야.

그래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나는 바뀌게 되겠지.

그리고 그건 아마 너에 의해서이며 너를 위해서 일거야.

 

있지, 나는 아직도 변하는 게 두려워. 절대 변화하지 않을 것 같은 게 변화하고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 아직도 내겐 두려운 거야.

그래서 나는 변하려고. 더 이상 그런 것 두려워하지 않는 나로, 당당히 너라는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봄은 변화하는 계절이잖아. 모든 것이 잠에서 깨어나 살아 숨 쉬는 그런 계절. 그러니까 나는 나를 살아 숨 쉬게 할 봄을 당당하게 마주하고 싶어.

 

그러니까 기다려줘.

지금은 꽃 한 송이 볼 수 없는 나지만 반드시 너라는 봄을 만나러 갈 테니까.

이 겨울이 끝없이 계속될 것 같아도 결국 이건 너라는 봄을 만나러 가기 위한 꽃샘추위에 불과하니까.

 

언젠가 따뜻한 봄을 맞이할 거고 계절은 변화하겠지.

그럼 다시 올 봄을 기다리자.

 

사랑해.

이것만큼은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을 나의 계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