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커미 2024. 9. 15. 23:05

데이트란 무엇인가. 흔히 연인들끼리 즐기는 나들이라고 해석하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연인들 사이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 그리고 당연하게도 데이트란 연인들끼리 가지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일 것이다.

 

"...."

"...."

 

그렇다면 연인이라고 하기 어려운 약혼자 사이의 데이트는 어떠할까. 나는 현재 그 답변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이루어진 약혼 관계이기에 우리는 연인은 고사하고 친구조차 아니었던지라.... 나와 한 공자의 관계를 정의하자면 연인이상 친구미만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이렇다 하기에도 저렇다 하기에도 어려운 관계.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색해...!!!"

 

어색하다. 그것도 심히! 이 상황을 설명하자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잡힌 한 공자와의 데이트 약속에 부랴부랴 준비하여 목적지도 모르는 상태로 마차에 올라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은 상황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그렇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들리는 것은 오직 마차가 덜컹거리는 소음이니 아주 미치고 펄쩍 뛸 지경이다. 그렇다면 먼저 말을 걸어보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말이야 쉽지! 나도 시도해 봤다! 해봤다고... 그런데 뭐랄까 이 어색한 침묵을 깨는 건 조금 어려웠다. 나름 의식하고 있는 상대 앞인걸? 기왕이면 멋들어진 대화 주제를 꺼내고 싶어 몇 번이고 곱씹은 대화 주제를 입에 담으려 했지만 이내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 그리 좋은 대화주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버려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건 내 잘못이라기엔 어려운 부분이 이...

 

"아, 이제 곧 도착할 것 같군요."

 

다고 주장하려던 순간 침묵을 깬 공자의 한마디에 고개를 돌려 창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의 풍경은 조금은 시끄러운 번화가, 삼삼오오 모인 평민들과 그 사이에 조금씩 섞여 있는 귀족들의 모습 그리고 지나다니는 마차들이 보이는 그런 광장이었다. 목적지가 여기였나.

 

"그러게요~ ...음, 그러고 보니 오늘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나요?"

 

목적지는 고사하고 오늘 데이트가 있었는지도 몰랐던 내가 어떻게 오늘 데이트 일정을 알 수 있겠는가. 설마 공자가 오늘 이정까지 따로 사전에 전달해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공자는 모를 강한 믿음으로 공자를 바라보자 한 공자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일단은 간단하게 브런치를 먹고 함께 샬롱과 보석점을 둘러볼까 합니다. 아직 공자께 제대로 된 선물을 드리지 못했으니까요."

 

흠, 예물로 보내온 보석들은 선물도 아니란 건가. 예물로 받았던 한눈에 봐도 고풍스럽고 비싸보였던 보석들이 떠올라 역시 만만찬은 한 가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문도 돈으로는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데. 약간의 패배감이 느껴질 때쯤 멈춰서는 마차와 이어지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자 도착한 곳은 광장의 중심인 분수대였다.

 

'광장... 오랜만이네.'

 

분수대를 보며 잠시 추억에 잠겨 있던 찰나 한 공자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고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에스코트를 해주었다. 몸에 배어있는 자연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자연스럽게 에스코트하는 공자의 모습이 떠올라 조금 뚱한 표정을 지을 뻔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에스코트를 해주는 공자의 손을 잡고 광장의 한가운데에 발을 디뎠다.

 

"그럼 있다가 뵙겠습니다."

 

우리가 마차에서 내린 것을 확인한 마부는 우리에게 깊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곤 다시 말을 몰아 자리를 떴다. 그런 마부를 가만 보다 이내 한 공자에게로 시선을 돌려 다시 내려앉은 어색한 침묵을 깰 겸 하여 작게 웃으며 말을 붙여 보았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면 되나요? 에스코트, 기대해도 되겠죠?"

 

부담을 주는 말이었으려나, 하지만 약간의 진심도 담겨 있는지라. 어찌 되었든 그 말을 들은 한 공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물론, 그런 영광을 제게 주신다면. 자, 이쪽입니다. 공자의 취향에 맞는다면 좋겠네요."

 

꽤나 자신감에 찬 웃는 얼굴. 싫지 않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아닐까. 그렇게 우리를 발맞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자가 안내한 곳은 꽤나 유명한 브런치 식당, 요즘 유행하는 곳이라고 했던가. 아직 가본 적이 없어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공자의 뒤를 따라갔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맞는 것은 따끈따끈한 토스트와 완벽한 서니사이드 업 그리고 채소 조금과 노릇하게 구워낸 소시지가 아닌 직원에 어쩔 줄 모르는 사과뿐이었다.

 

"얼마 전 저희가 이용하는 상단에 문제가 생겨 이번에 주요 재교가 모두 소진되어... 정말...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보자니 가게에서 이용하는 상단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실로 유감스럽고 불운한 사고였다. 별 수 있겠나, 가게가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다른 가게를 찾을 수밖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공자가 황급히 안내한 식당은... 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실로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음, 맛... 있네요."

".....다행입니다."

 

노릇노릇하다 못해 검게 탄 것을 긁어낸 자국이 남은 토스트와 완전하게 익어버린 계란, 그리고 시들시들한 채소와 칼집을 내지 않아 옆구리가 터진 소시지. 맛이 무난하기라도 하면 좋았겠지만 무난한 것이 제일 어렵다고 하던가, 그걸 이렇게 유감스럽게 실감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나마 공자의 앞이라서 겨우 접시를 비워냈지 공자와 함께 온 것이 아니었다면 접시를 비우기는커녕 반도 비우지 못했을 것이 자명한 맛이었다.

 

공자 역시 마찬가지 인지 아까부터 질겅질겅 채소를 씹는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나의 시선을 눈치채곤 애써 웃어 보이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 아무리 한 공자라고 한들 첫 계획부터 이리 망가질 줄 알았겠는가. 당연하게도 공자에 대한 책망보다는 안쓰러운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다음은 샬롱이었던가요?"

 

그래서 애써 웃으며 암울했던 침묵을 깨자 공자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가 향하게 될 샬롱에 대해 설명했다. 공자의 입에서 나온 샬롱은 꽤 유명한 샬롱이었다. 받는 손님도 온통 고위 귀족이며 유서 깊은 귀족가문이 아니면 좀처럼 쉬이 손님으로 받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한마디로 아까의 식당과 같은 일이 생길 걱정은 넣어둬도 된다는 것이었다.

 

"좋네요~ 안 그래도 새 옷을 지어야 했는데 감사해요 공자."

 

공자와 함께 샬롱으로 향할 생각에 끔찍한 상태의 음식도 꽤나 괜찮게 느껴졌다.

 

-우득

 

....아니다 취소. 여기 음식은 정말 최악이다. 나 방금 뭐 씹은 거지. ....아무튼 그럭저럭 배를 채운 우리는 거리를 걸으며 샬롱으로 향했다. 이제는 조금 풀린 날씨와 함께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니 그리 춥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선선한 날씨였다. 더군다나 대화 상대도 나쁘지 않았다. 호감 있고 나를 마차가 지나다니는 외각이 아닌 안쪽으로 걷게 해주는 배려를 가진 공자와 함께니 내심 실망감이 서렸던 기분도 조금은 나아진 듯하였다.

 

"으앗...! 죄송합니다!"

"...?! 백 공자, 괜찮으신가요?"

 

...정확히는 나아질 뻔하였다. 귀족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앞을 보지 못하고 달리다 우리 사이로 달려와 버렸고 그 과정에서 실수로 나를 쳐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옆에 있던 가게의 창살 덕에 넘어지진 않아 다치지는 않았지만 곧바로 좋아지려던 기분이 사라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 도련님!! 세상에... 어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어 달려온 그 아이의 시녀로 보이는 여성이 우리에게 허리 굽혀 사죄하자 당황스러웠던 기분도 이내 사라졌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운수가 좋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저는 괜찮아요 공자, 그리고 그렇게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요~"

 

시녀의 손길에 따라 허리를 숙이며 미안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 약간 뚱했던 마음도 풀어지며 아이와 시녀를 보냈다. 놀라긴 했지만 뭐... 아이가 실수할 수도 있는 법 아니겠는가. 게다가 귀족이라면 한참 뛰어놀 나이에 엄격한 교육을 받아야 하니 이해하지 못할 활발함도 아니었다. 확실히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만...

 

"하하, 오늘은 운수가 조금 안 좋네요. 그쵸?"

 

그냥 좀... 오늘은 집에 박혀있어야 하는 날인가 보다 싶었다. 그렇게 다시 옷을 털고 샬롱으로 향하려던 순간.

 

-투둑

 

작게 불안한 소리가 들렸다. 묘사를 하자면... 옷 찢어지는 소리? 그러니까 한마디로 돌아보기 무서운 소리였다는 것이다.

 

"....공자 잠깐 제 뒤에 좀 봐주실래요?"

 

그 소리에 함께 굳어버린 한 공자에게 부탁을 하고 이어 한 공자가 들려준 소식은 예상 그대로였다.

 

"...이건 못쓰겠네요."

 

재킷이 찢어져 버렸다. 아, 아끼는 거였는데... 울컥 짜증이 올라오다 이내 눈에 담긴 어쩔 줄 몰라하는 공자의 모습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짜증을 내면 민망해지는 건 공자뿐이니까. 하지만 공자는 그런 한숨에도 더욱 어쩔 줄 몰라하며 크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딱히 공자 때문도 아닌데. 바보 같다.

 

"전 괜찮아요 공자~ 공자 얼굴이 제 얼굴보다 안 좋아 보이네, 그러지 말고 웃어요. 고작 옷인걸요?"

 

아끼는 옷이지만. 뭐, 저 바보 같은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 나도 모르게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공자의 표정이 한결 풀려 보였다. 공자는 정말 표정이 잘 드러난다니까. 저런 사람이 확실하게 선을 긋는 조금 냉정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냥 솔직하고 귀여운 사람인데.

 

"샬롱에서 새 재킷도 하나 맞추는 게 좋겠습니다. 바로 입고 갈려면 기성품으로 해야겠지만요."

 

속상하다는 듯 내 옷자락을 쥐어 보인 공자가 그리 말했다. 샬롱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라 다행이야.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이 공자라는 것도. 그래서 그냥 괜히 웃음이 났다. 걱정받는 것도 기분 좋았고 내 처지가 통탄스러운데도 웃음이 나는 내가 웃겨서 작게 웃어버렸다.

 

"공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당신의 표정도 웃겨. 귀여운 사람. 어찌 보면 최악의 하루, 최악의 시작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저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이 사람, 한가원이라서 괜찮은 날이 되어 웃음이 났다. 나 정말 단단히 반해버렸구나. 그냥 작은 걱정에도, 온 얼굴에 다 드러나는 그 모습이 귀여웠다.

 

"안 가세요? 그렇게 가만히 계시면 두고 갈 거예요 한 공자~"

 

자연스럽게 찢어진 내 옷을 벗겨 자신의 옷을 걸쳐주는 그 다정함이 좋았다. 그게 나만의 것인 이 사람이 해주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장난스럽게 말하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아... 같이, 같이 가시죠!"

 

뒤늦게 따라오는 공자를 보며 터질듯한 웃음을 참으며 한 가지를 확신했다. 오늘 어떤 불행이 나를 기다린다 한들 절대로, 절대로 내 첫 데이트가 최악의 날이 될 일은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