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커미 2024. 9. 28. 22:18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이 현의 볼을 간지렸다.
 
"으음~..." 
 
자꾸만 볼을 간지리는 아침 햇살에 이기지 못한 이현이 결국에 패배선언을 하며 느릿하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나 조금은 선선한 아침 공긴.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는 아침의 침실이었다.
 
"하암.... 조금만 더어..."
 
이 현이 일어나는 움직임에 깨어났는지 작게 칭얼거리며 뒤척이는 유예하를 본 이현은 가볍게 유예하의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며 본인도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해 잠결에 취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으응, 아직 조금 더 자도 괜찮아."
 
평화로운 아침. 다만 이 현의 목소리는 그다지 평온하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챈 유예하가 잠에 취한 상태로 함께 몸을 일으켜 눈을 감은 채로 이 현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 웅얼거렸다.
 
"나쁜 꿈이라도 꿨어어~?"
 
"그런 건 아닌데 그냥..."
 
이 현은 잠시 입술을 달싹이다 제 어깨에 기댄 유예하의 머리 위에 제 머리를 역시 살포시 기대며 함께 눈을 감았다.
 
"....옛날 꿈을 꿨어."
 
서로의 따뜻한 체온과 서늘한 아침 공기에 이 현은 그대로 깜빡 선잠에 들어버렸다. 그렇게 빠진 잠은 그녀에게 어젯밤의 꿈을 다시 한번 회상하게 해 줬다.
 
"너, 왜 여기서 울고 있어어~?"
 
푸른 은빛이 태양을 등져 환하게 빛났다. 유예하의 첫인상은 예쁜 은빛, 딱 그 정도였다.... 사실 이어지는 말들에서 수많은 첫인상이 추가되었지만 말이다.
 
".....흡?!"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호그와트의 구석에서 울고 있던 이 현을 발견한 유예하가 말을 걸자 이 현은 너무 놀란 나머지 울음을 삼키다 못해 숨까지 삼켜 버려 크게 딸꾹질하기 시작했다. 그런 이 현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다 웃음을 터뜨린 유예하가 웃으며 제 소매로 이현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현의 딸꾹질이 멈출 때까지 곁에 앉아 조용히 기다려 준 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유예하는 세상에 홀로 남아 어디론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이 현을 붙잡아 준 것이었다.
 
그때 당시 이 현에게 유예하란 예쁜 물빛의 은빛 머리를 가진 아이, 그리고 다정한 아이 정도였으나 내심 차갑고 무서운 인상 때문에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으며 스스로도 말을 걸지 못해 외톨이가 된 이 현에게 있어 유예하는 한줄기의 구원이었다. 그녀가 있었기에 이 현은 세상에 남을 수 있었다. 마침 같은 기숙사였던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으며 언제 어디서나 붙어 다니는 단짝이 되었다.
 
'즐거웠지.'
 
이 현에게 유예하와 함께한 그 시간들은 정말이지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유예하와 함께한 덕분인지 이 현이 생각했던 것처럼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다른 아이들이 이 현에게 다가와 주었기에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둘에게는 한 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이현과는 얼굴만 알며 간간히 인사를 주고받던 아이였으나 유예하와는 절친까진 아니더라도 꽤나 친밀한 사이였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머글 태생의 아이였으며 그것에 자격지심을 가진 아이였던 것으로 이 현은 회상했다. 착각이라기엔 그 아이의 태도는 너무나 명백했으니 혼혈이었던 이 현과는 친해지길 꺼려하였으면서 순수혈통이었던 유예하와는 적극적으로 친해지려 하였기 때문이다. 친구의 혈통으로 자신의 자격지심을 극복하려는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 어렸던 이 현은 그 사실을 몰랐으며 그저 자신과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되돌아보면 부끄러운 질투를 조금 하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유예하는 자신이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기에 그때 당시 이 현에게 그 아이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그 아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모든 사건이 끝난 후였다. 한 학생이 이 현이 5학년때 자퇴를 했는데 그에 따라붙는 이상한 소문이 있었다. 순수혈통인 그 아이가 머글 태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자퇴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그 괴롭힘의 주동자에는 바로 그 아이가 있었다는 소문이었는데 나중에 밝혀진 봐로는 그 소문은 진실이며 그 아이는 자퇴한 아이를 정말로 철저하게 괴롭혔다고 한다. 오죽하면 자퇴한 아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 하다 실패했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로 말이다. 그 이유는 단지 자퇴한 그 아이가 자신보다 뛰어나지도 않은 주제에 순수혈통이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이 현에 귀에 들려왔다는 것은 이 현과 매 순간 함께했던 유예하 역시 그 이야기를 들었다는 뜻이었다. 이 현에게도 충격적인 이야기가 과연 그 아이와 친밀하게 지냈던 유예하에게는 얼마나 충격적이게 다가왔을까.
 
'그때 네 곁에 있어줘야 했는데.'
 
그럴 리 없다며 사실을 부정한 유예하는 그 아이를 찾아 나섰고 그날 밤 기숙사로 돌아오지 않았었다. 다음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태도를 취하긴 했으나 이 현은 알 수 있었다. 유예하의 마음 한구석이 부서졌다는 사실을. 그래서 단지 이 현은 유예하를 꼭 안아주었다. 그때 그것이 그녀의 최선이었으며 지금의 그녀도 그것이 최선임을 알고 있지만 이제와서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었다. 그때 네게 괜찮은지 물었다면 어땠을까. 그때 네게 다 털어놔도 된다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그랬더라면 그날 우리가 그리 많이 아프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 절대로 잊지 못할 그날이 다가왔다. 바로 7학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프롬파티. 모두가 삼삼오오 모여 아름다운 드레스와 멋진 정장을 차려입고 자신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그날. 이 현과 유예하여도 마찬가지로 몇 달 전부터 고른 자신과 잘 어울리는 드레스를 입고 친구들과의 마지막 추억을 즐겼다.
 
"있지~ 우리 잠깐 나갈까아?"
 
한참 파티가 무르익을 와중이었다. 이 현은 자신을 불러내는 유예하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왜인지 즐겁고 행복하기만 해야 하는 오늘, 조금 서글퍼 보이는 유예하의 눈망울에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따라 테라스로 걸음 했다.
 
무도회장의 구석, 오가는 사람들이 적어 조용한 테라스는 그 너머로 나아가 문을 닫으니 반짝이며 빛나던 파티장과는 완전히 격리된 둘만의 세계가 되었다. 그곳에서의 유예하는 분명 울고 있었으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말 즐거운 듯 걸어오는 이야기에 그것이 착각인 줄만 알 정도로 유예하는 정말로 즐겁고 행복했으며 어딘가 후련해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했을까. 유예하는 문뜩 하늘에 뜬 아름다운 보름을 등지고 테라스의 난간에 걸터앉아 웃었다.

"있지이~ 현아."

이 현의 이름을 부르는 유예하는 울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으나 그 이상으로 외로워 보였다. 유예하가 이현의 이름을 부르자 산들바람이 불어오며 유예하의 치맛자락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부드러운 쉬폰드레스가 아름답게 퍼져가며 달빛이 너울에 맞춰 흩날렸다. 달빛이 내리며 유예하를 부드럽게 감싸는 달빛은 셀레네의 숄과 같아 금방이라도 저 너머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밤의 냄새가 시리도록 차갑게 코를 찔러와 괜스레 이 현은 눈물을 숨기려 어떻게든 웃어 보였다.

"왜 불러?"

"있지 현아아~"

유예하는 다시 한번 이 현의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이 현은 그곳에 있었다. 그저 그것으로 답하여 침묵으로 화답했다. 그렇기에 이 현의 답을 받은 유예하는 한참 동안 서글픈 눈으로 가만 이 현을 스스로의 두 눈동자에 담았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있지~ 좋아해. ...라고 한다면 함께 도망가 줄래애~?"

유예하는 이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 현은 그 손을 보지 못했을 만큼 유예하의 좋아해란 한마디에 동요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혈류가 앞의 붉음을 따라잡으려 더욱 빨리 달렸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이 달뜨듯 뜨거워져갔고 속은 텅 비어진 것에 갑자기 물이 들어찬 듯하며 울렁거렸다. 아마 얼굴 역시 붉어졌을 것이다. 유예하는 언제까지고 이 현의 답을 기다려 줄듯 손을 내밀고 있었고 이 현이 유예하의 서글픈 눈망울을 알아차린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이 현은 물론이야.라고 답하고 싶었다. 이 현은 유예하와 함께라면 어디로든 괜찮을 듯하여 그 손을 잡고 멀리멀리 가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이 없어도 좋았다. 그저 유예하만 있다면 상관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지만 예하야, 우리는 그러면 안 되잖아.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니까. 너와 함께 별나라로 떠나가는 것 역시 더없이 행복한 일이겠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발 붙이고 살아가야 하니까. 다만 세상에서 영원히 함께 춤을 추자. 너의 스탭에는 항상 내가 뒤따라 갈 테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가지 마, 우리 세상에서 살자 예하야."

네가 나를 이 세상에 붙잡아 준 것처럼. 첫날 나에게 말을 걸어준 것처럼. 네가 나를 네 세계로 끌어들였던 것처럼 너의 손을 잡고 너를 나의 품으로 끌어들였다. 너는 그때의 나처럼 한참을 울었다. 그때의 너와 다르게 나도 한참을 울었다. 후에 진정된 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너는 이 세계를 순수한 이들만의 세계로 만들려 했던 것 같다. 그 아이의 사건으로 모든 것에 절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너를 말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네가 이 세상에 남아서 다행이야.

아마 그것으로 우리는 평행선에 섰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서로의 시선이 맞는 평행선으로. 네가 나를 잡아주었고 내가 너를 잡았으니 우리는 이 세상에서 외롭지 않았다.

"옛날 꿈~?"

"응, 호그와트 때."

그 말에 유예하는 부끄럽다는 듯 이 현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때 완전 흑역사 가득이야아~ 괜히 떠올리지 마아."

그리고는 무게를 실어 이 현과 함께 다시 부드러운 침대 시트로 몸을 뉘었다.

"옛날이야기 말고오, 좀 더 자자아. 응? 주말이잖아아"

"정말~... 오늘만이야?"

그렇게 두 소녀는, 아니 이제 소녀라고 부를 수 없는 나이에 두 사람은 부드러운 침대 시트에 몸을 뉘어 포근한 이불을 살결에 엮어 서로를 서로의 품에 안은 채 이 세상에 남아 다시 꿈을 꾸었다.
햇살이 부드러운 가을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