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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커미션

by 샌드위치 커미 2025. 2. 16.

읽는 내내 여러 가지 의문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쿠로코의 농구라는 만화를 알고는 있으나 보지는 않은 상태로, 하이큐는 모두 정주행 한 상태로 이 패러디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캐릭터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여타 소설보다는 조금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패러디 소설은 이미 독자가 원작을 읽었다는 전제 하에 진행되는 소설이기에 원작을 읽지 않은 저에게 있어서는 그리 친절한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허나 그 이상으로 이 소설을 연재분의 끝까지 읽었던 이유는 이 소설이 제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허나 그것이 언제나 옳은가라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역지사지가 언제나 옳다면 법이 존재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재판 따위 거치지 않고 상대가 자신에게 한 짓을 그대로 하면 될 뿐입니다. 허나 현실에서는 조금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역지사지가 반드시 통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이 소설이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이 소설의 초반부는 전형적인 패러디의 왕도식 전개를 따르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빙의하고 원작의 주인공 같았던 캐릭터가 악역화 되며 그 주변에 있던 캐릭터들이 주인공에게 감기고 사죄하며 후회하는 그런 평범한 내용의 전개를 따를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메노와 나나하라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으며 나나하라에 빙의된 빙의자는 그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인 피해자에 가까운 포지션이었습니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유메노와 나나하라라고 생각합니다. 패러디 소설 속 전형적인 주인공 무리를 홀리고 다니는 트립퍼와 소설의 엑스트라였다가 그런 트립퍼의 행보에 불만을 가지는 악역. 허나 둘은 서로에게 있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습니다. 나나하라가 유메노를 괴롭힌 것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만 유메노가 이후 나나하라에게 한 짓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시점에서는 나나하라가 더욱 불쌍한 캐릭터처럼 서술되었지만 제 입장에서는 둘 모두 같은 사람이라 느껴졌습니다. 제게 있어 그들의 악의는 흔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 잘난 사람에 대한 질투심과 정도를 넘어선 열등감, 나를 괴롭힌 사람에 대한 복수 따위가 적절하게 엮여 그 둘의 관계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들게 하였습니다. 이쯤 돼서 다시 짚고 넘어가는 역지사지는 옳은가란 질문에 두 사람은 과연 대답할 수 있을까요. 유메노는 긍정할 것이며 나나하라는 부정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요. 결론적으로 저를 허무하게 만들었던 것은 나나하라는 이미 죽은 사람이며 유메노는 더 이상 나나하라에게 사과하지도 나나하라에게 사과를 받지도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제 3자인 빙의자니까요.

 

그렇게 끝맺어진 둘의 이야기에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터무니없지만 동시에 참으로 현실적입니다. 많은 현실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없고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기도 하며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결국 모종의 이유로, 예를 들면 이 소설에서는 비현실적이지만 죽은 나나하라의 몸에 빙의자가 빙의한 것으로 용서를 구하지도 용서를 하지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그 점이 저에게는 참으로 묘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원작이 열혈 청춘 소년 만화인 점으로 미루어봤을 때 이것은 터무니없이 현실적이며 암울하고 서글픈 이야기니까요. 물론 소설에서도 이를 주인공을 통해 다루고 있지만 저는 독자의 시점으로 원작을 생각했을 때 더욱 서글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열혈 청춘 소년 만화를 볼 때 누군가는 현실을 생각하고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며 이야기를 써내려 갔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소개란에도 쓰여있듯 완전무결한 선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점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이 소설에 그 누구도 완전무결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보였습니다. 굳이 죄가 없는 인물을 찾자면 빙의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이 빙의자가 선역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고개를 갸웃할 것 같습니다. 이 빙의자가 죄가 없는 것은 그저 죄를 쌓을 만한 시간도 그런 처지에도 놓이지 않았을 뿐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아마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바뀌게 되겠죠. 빙의자는 소개란에서 악녀라고 묘사되니까요. 어쩌면 본래의 나나하라가 악녀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기적의 세대가 후회한 것은 원래는 나나하라가 아닌 빙의된 빙의 자니까요.

 

더해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독특한 시점 전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페이크 주인공을 사용하는 소설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라 1부, 약 30화 정도를 소모할 정도로 페이크 주인공을 길게 끌어가는 것은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어찌 보면 1부의 악녀라고 볼 수 있는 유메노의 시점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로우며 유메노가 진 주인공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끕니다.

 

작가님은 나나하라에게 빙의한 빙의자의 시점으로 진행된 1부를 페이크 주인공이라 칭하였지만 저는 진실을 알고 나서도 그다지 페이크 주인공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빙의자 역시 여타 주인공들과 같은 위치에 섰으니까요.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이 후회하며 다시 다가오는 것은 충분히 주인공이 있을만한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빙의자를 그저 페이크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중 한 명으로 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제 입장에서 이 이야기는 3명의 주인공이 진행하는 이야기가 되겠죠. 굉장히 기대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1부에서 도통 이해 할 수 없었던, 그저 흔한 트립퍼들이 그러하듯 트립퍼 버프를 지녔다가 진주인공이 나오자 그 버프가 사라져 몰락하는 길을 걸은 유메노의 시점에서 2부를 진행한다는 점은 제게 굉장한 기대감을 심어줬습니다. 1화밖에 나오지 않은 유메노의 이야기의 시작 또한 굉장히 흥미로웠고요. 유메노가 단순한 악역이나 주인공이 아닌 고충을 겪으며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작 1화 만으로도 이전에 유메노의 행동이 이해가 갔으며 앞으로의 유메노의 행보가 기대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높은 평가를 주고 싶은 작품입니다. 기왕이면 완결이 나서 한 번에 정주행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걸 같은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한 화에서 무언가 터져 나오는 그런 작품이 아닌 다음 화가 기대되는 반전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은 오랜만이라 더욱 인상 깊다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보통 가볍고 도파민 위주로 돌아간다 할 수 있는 패러디물에서 현실적인 고뇌를 하게 해주는 작품 내의 이야기가 저에게는 굉장히 감명 깊게 다가왔습니다. 이후 이어질 2부에서도 더욱 많은 고뇌를 할 수 있는 내용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은 덕분에 쿠로코의 농구라는 만화에 흥미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패러디의 순기능이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게 읽었던 작품입니다. 이 소설에서 나온, 제가 적극적으로 이 소설의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마지막으로 인용하며 서평을 끝맺도록 하겠습니다.

 

"뭐... 난 되도록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