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의 첫 기억은 매우 흐릿한 기억일 것 같아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안개 낀 듯한 기억 속에서 어린 유나는 발걸음도 겨우 떼는 상태로 가로수길을 걷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혼자가 아닌 다정하신 부모님과 함께 말이죠. 아장아장 휘청휘청 한 걸음씩 내딛던 그날의 기억이 유나에게 있어서는 첫 기억 일 것 같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분명 흐릿하지만 그날 따스했던 햇살과 시원했던 산들바람 그리고 코를 간지리던 녹빛 풀내음은 그녀에게 있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유나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한 천재의 이야기가요.
유나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 였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궁금하고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한 아이였겠죠. 때문에 특별히 연약한 몸도 아니지만 특별히 튼튼한 몸도 아니라 여기저기 자잘하게 다치는 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겠죠. 여러 가지로 몸으로 경험해 보면서 성장하는 타입이었을 것 같습니다. 또래 여자애들과는 다르게 매미라던가 지렁이도 문제없이 잘 잡아내고 남자아이들과도 잘 어울렸겠죠. 물론 예쁜 외모덕에 여자아이들에게도 인기였을 것 같습니다. 질투를 받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 당시 악의조차 자라지 않은 어린아이들이라 질투라는 감정에 순수한 의문으로 응대한 덕에 크게 미움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한 경험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유년기라고 말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은 유나에게 있어서 즐겁고 새로운 것을 잔뜩 배울 수 있는,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 그런 시절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내디딘 첫발이 사랑이라는 것은 후에 유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굉장히 큰 선물이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성장하고 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을때 유나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것 같습니다. 유년 시절에도 두각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워낙 어린 나이였고 유나의 부모님이 교육에 열을 올리는 타입도 아니었기에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천재성이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드러났을 것 같습니다. 유나에게 있어 학습이란 너무나 쉽게 다가오는 것이었을 것 같습니다. 한번 배운 것은 쉽게 잊지 않고 응용 역시 간단하게 해내며 다른 아이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내는 그야말로 천재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전형적인 천재의 편린을 보여 줄 것 같습니다. 유나는 그런 자신의 천재성에 별 생각이 없었지만 어린 나이부터 사교육에 시달리는 또래 친구들에게는 좋게 보이지 않겠죠. 유나의 부모님이 교육열이 없고 또 유나가 친구들과 그리고 뛰노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보니 유나에게 많은 자유시간을 줬을 것 같고 유나는 그 시간을 친구들과 함께 쓰려하겠지만 친구들은 부모님에 의한 사교육으로 인해 학원에 다니느라 바빠 많은 자유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될 것 같아요. 그뿐만 아니라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앞서 말했듯 유나를 좋게 보지 않는 친구들로 인해 유나에게 있어 학교는 그리 재밌는 곳이 아니게 되겠죠. 모든 세상이 아름답고 즐겁고 또 신날 것만 같았던 유나에게 있어서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유나는 처음으로 이 세상에 조금 실망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리 외롭진 않았어요. 사랑하는 동생 유라가 있었고 유라는 유나에게 있어 언제나 좋은 동생이 되어줬으니까요. 유나도 유라를 위해서라면 언제나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었죠. 더욱이 부모님 역시 다정하시고 언제나 유나와 유라를 위해주시는 분들이라 유라는 뛰어난 천재성을 가졌으면서도 세상에 회의감을 느끼거나 실망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렇게 중학교 생활도 사랑하는 동생과 가족이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버틸 수 있었겠죠. 유나의 천재성은 가면 갈수록 더욱 돋보이게 되어 아이들과의 거리를 유발하는 촉매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옆에 있어주는 친구들도 있었기에 유나는 분명 괜찮았을 거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언제나 사건은 벌어지는 법이고 그건 유나가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의 일일 것 같아요. 나들이를 갔다 오는 길 크게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뒤집히고 유나와 유라는 다행히 목숨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다쳤지만 앞자리에 타고 있었던 유나의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말았을 것 같아요. 유나가 한 순간에 소녀가장이 되어버린 거죠. 갑작스레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은 기분에 유나는 절망했을 것 같아요. 그녀에게 있어 부모님은 큰 지지자였고 그런 지지라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기분이란 상상 그 이상이었겠죠. 어째서 자신이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비극이 있어야 하는지 유나는 무엇하나 알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세상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어버렸겠죠. 세상에 실망해 버렸을 거예요.
하지만 곧 그만두고 말았을 거예요. 왜냐면 유나에겐 유라가 있으니까요. 그 사고 이후 방에 틀어박혀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유라의 어리광을 받아주기만 했던 유나의 눈에 망가져가는 유라의 모습이 보였을 거예요. 그래서 아, 이렇게 있으면 안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겠죠. 유라에게 있어서는 유나가 세상의 지표이며 전부가 되었을 테니까요.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유나가 다시 밖으로 나가며 알바를 시작하게 된 건요. 알바나 취업을 위해 고등학교 졸업장 정도는 땄지만 대학교엔 진학하지 않았을 거예요. 당장 유라와의 생활을 책임지며 유라를 대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서는 대학을 다닐 시간도 돈도 없을 테니까요.
어떤 알바든 닥치는대로 해볼 거예요. 유나를 괴롭혔던 천재성도 이때만큼은 빛을 발하겠죠. 그렇게 쉴 틈 없이 알바를 하고 또 돈을 벌며 가끔씩 둘러보는 주위가, 하늘이 참으로 아름다워서 유나는 어느 순간 부모님을 앗아간 세상을 그리 미워하지 못하게 될 거예요. 결코 미워할 수 없을 거예요. 부모님과 함께 했던 그 세상이, 첫 번째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그 세상이 유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곳이니까요. 그렇게 유나는 살아갈 거예요. 세상을 사랑했던 한 천재는 세상에 실망했으나 다시 세상을 사랑하며 그렇게 한없이 살아가겠죠. 미래 계획도 착실하게 세울 거예요. 고졸인 자신을 받아줄 회사는 성에 차지 않으니 자신이 직접 회사를 꾸려갈 계획이겠죠. 그렇게 유나는 살아갈 거예요.
유라의 첫 기억은 나들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차가 뒤집히는 사고가 난 그날일 거예요. 물론 이전까지의 기억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유라에게 있어 첫번째 기억이라 한다면 유라는 망설임 없이 그 기억을 뽑을 거예요. 그만큼 유라에게 있어서 그 기억은 충격적이고 끔찍한 기억이었으니까요.
유라는 어릴적 부터 뛰어났을 거예요. 다만 유나처럼 활발하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 뛰어난 나머지 한번 본 것은 그리고 이해한 것은 좀처럼 쉽게 잊지 않아 다른 것에 쉬이 흥미를 붙이지 못했기 때문일 것 같아요. 유라에게 있어서 세상이란 너무나 쉽고 간단한 것이며 금방 질려버리는 재미없는 존재였겠죠. 특히나 또래 친구들은 수준이 맞지 않아 유년 시절 유라의 곁에는 또래 친구들이 없었을 거예요. 가장 큰 이유는 유라 스스로가 또래 친구들을 거부했다는 것이겠죠. 그렇게 유나는 특별하게 아프지 않음에도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을 거예요. 타인과 교류를 하지 않는 모습에 부모님께서 걱정하시자 최소한의 교류를 하며 다른 아이들과 트러블 없이 나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마땅히 친구라고 할만한 아이들은 없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유라에게 친구가 되어준 것은 sns였을 것 같아요. 인터넷 세상에는 유나 조차 모두 수용하기 힘들 정도의 많은 정보들이 있고 다양한 인간군상이 sns에 있으니까요. 유라는 그런 sns에 관심을 가지며 그곳에 빠지게 되고 뛰어난 천재성으로 부모님께 덜미가 잡히지 않게 행동하겠죠.
sns에 빠지게 되면서 유라는 그곳에서 화려한 삶을 사는 셀럽들을 보게 될 거예요. 유라는 딱히 그들을 부러워 하지 않았으며 애초에 그들처럼 화려 하게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미담을 들으며 사람들을 이렇게 움직이는 것 정도는 자신도 할 수 있겠는데? 같은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그때부터 유라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었겠죠. 유라는 천재였기에 타인의 호감을 사는 법을 쉽게 터득할 수 있었고 예쁜 외모와 함께 손쉽게 타인의 호감을 샀을 거예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다가가며 붙임성 좋은 자신을 연기했겠죠. 유라는 자신의 손아귀에서 굴러가는 인간관계를 보며 기쁨을 느꼈을 거예요. 이리도 흥미 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노력할만한 것을 찾고 그것이 심지어 즐겁기까지 하다면 힘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겠죠.
그럼에도 유라의 모든 모습이 마냥 거짓은 아니었으며 오직 그녀의 가족, 부모님과 유나에게 만큼은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었겠죠. 특히 유라에게 있어서 유나는 특별한 존재였을 거예요. 물론 가족으로서도 유나를 사랑하고 있지만 유라에게 있어 유나는 더없이 흥미로운 존재였을 거예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천재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질리지 않은 유나의 모습은 유라에게 있어 더없이 신선하게 다가왔을 거예요. 자신과 더없이 비슷하면서도 결코 자신과 같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유나가 신기하고 그런 유나의 길을 응원하고 싶어 졌겠죠.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히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언니인 유나가 가는 길 또한 결코 오답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겠죠. 그렇게 안 그래도 가족이라는 사실 자체로 높은 호감도에 자신과 유사한 천재성을 가졌으면서 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유라에게는 너무나 새롭게 다가와 유라는 유나라는 존재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잘 따랐을 것 같아요. 흔한 자매 간의 싸움 한번 없었겠죠.
그렇게 평화로울줄만 알았던 유라의 인생도 앞서 말했던 첫 번째 기억으로 인해 산산조각 날 것 같아요. 유일하게 마음을 내어주던 가족 대부분을 잃은 유라의 인생은 공허하기 그지없었겠죠. 그렇게 유라는 등교를 거부하고 방에 박혀 나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싫고 끝없는 외로움이 유라를 타고 올랐겠죠. 유라는 그제야 알게 되었을 거예요. 자신이 타인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칠 수 있었던 건 자신에게 있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언제나 유라를 믿고 지지해 줄 것만 같았던 부모님이 사라지자 유라에게는 그 자리가 텅 빈 공허가 되어버렸을 거예요. 그런 공허 속에서 유라는 이전과 같이 지낼 수 없었겠죠.
sns에 빠지며 공허를 메꾸기 위해 점점더 극단적인 쾌락주의를 추구하게 되었고 sns에서 받는 관심이 그의 일종이 되어 예쁜 외모로 코스프레를 하는 것으로 유명 코스플레이어가 되어 타인의 관심을 쓸어 담았겠죠. 유라는 그렇게 점점 망가져가고 병들어가고 말 거예요. 원래부터 의미를 찾기 어려웠던 삶에서 부모님이란 든든한 지지자를 잃어버리자 의미는커녕 그 무엇도 찾지 못하는 인생으로 변해버리고 만 것이죠.
하지만 삶을 포기하거나 하진 않았을 거예요. 애초에 공허를 두려워하는 궁극적인 이유도 무지에 대한 두려움이니 죽음이라는 무지에 다가가고 싶진 않았겠죠. 더군다나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유나가 자신을 위해 대학도 포기하면서까지 열심히 일을 하는데 유라는 결코 그런 유나를 저버릴 수 없을 거예요. 그렇게 유라는 유나가 원하는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대학에 들어갔겠죠. 하지만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어릴 적처럼 집에서 보냈을 것 같아요. 여전히 인간관계는 그들을 가지고 놀 때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만 예전처럼 신경을 기울이며 가지고 놀지는 않겠죠. 그럼에도 유라의 주변인들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거예요. 유라는 어릴 적부터 뛰어난 연기자였으니까요.
그렇게 유라는 의욕없이 살아가며 쾌락주의에 빠진 삶을 살아가게 될 거예요. 물론 자신을 사랑하며 어쩌면 자신만을 보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유나가 있기에 나쁜 길로 빠져들지는 않겠죠. 무엇이 나쁜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머리가 되는 유라니까요. 유라의 인생은 이럴 거예요. 태어나면서부터 과도하게 뛰어난 천재성에 세상에 무료함을 느끼고 sns를 접하며 그곳에서 살아가다 부모님이라는 지지자를 잃고 그 두려움에 극단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게 되는, 또 자신과 같은 천재성을 가졌으면서 자신과는 다른 길을 걷는 언니를 사랑하는 그런 인생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