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외국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문체도 전개도 모든 것들이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고전 문학의 단편선을 읽는 느낌이 들어 이대로 고전 단편선에 실려도 어색함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음미할만한 소설이었으며 열린 결말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곱씹어보게 하는 좋은 이야기였다 생각합니다.
문체를 보자면 투박하지만 동시에 섬세하다는 모순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투박하고 거친 손을 가진 목각 장인의 손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형이 나오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는 문체였습니다. 확실하게 문체가 화려하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장인의 손이 투박하다 하여 그 작업물이 아름답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더불어 약간의 번역체 같은 느낌도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필자분께서 외국의 고전 문학 읽기를 즐기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와 별개로 호흡은 집중하여 읽었기에 미처 헤아리지 못했지만 숨 막힐 정도로 길지도 그렇다고 너무 짧지도 않은 적절한 호흡이었다 생각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문장의 길이가 긴 편이 아니어서 읽을 때 더 쉬이 읽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듯 문체와 호흡에 관해서는 긍정적인 감상을 드리고 싶습니다. 특유의 고전 문학과 같은 느낌을 잘 살렸고 단순히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길지 않은 호흡으로 중간에 집중력이 끊기는 일이 없이 읽을 수 있었기에 분명 즐거움을 주는 글이었습니다.
허나 분위기 조성에서는 조금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분명 글의 분위기 조성은 훌륭하였습니다. 적당한 무게감이 있고 분위기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문장이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글을 읽는 내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일정한 흐름을 가진 분위기는 단연 훌륭했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허나 이 글의 장르를 생각해 보면 그 훌륭했던 분위기가 오히려 아쉬움을 자아내는 요소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로맨스를 담고 있으나 글을 읽는 내내 달콤함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의도하신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의도라 하여도 로맨스라는 장르를 차용하며 그 장르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못한 것에 조금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초반 W에 대한 설명을 읽고 두 남녀의 첫 만남을 읽을 때는 달콤하다기보다는 천둥이 치는 비바람과 검고 어두운 언덕의 낡은 저택이 생각났습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조금은 공포스럽고 이질감이 느껴지는... 뭐랄까 포식자 앞에 서있는 피식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J가 달콤한 운명을 느낀 것이 아닌 사랑이란 진득한 늪이라는 운명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것은 그것이 늪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사랑이란 늪이란 것은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동물의 육감에 대해 말씀하시며 앞으로의 전개에서 둘이 지독하게 사랑으로 엮일 것임을 암시했지만 초반을 읽으며 든 생각은 웬 사이코패스와 엮이는 불쌍한 여자의 이야기인가? 스릴러 추리물 일려나?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다시 읽는다면 그 부분에서 표현하고 싶으셨던 것이 피할 수 없는 질척한 사랑이란 운명의 늪에 빠졌음을 육감으로 느낀고 그것을 피하고 싶어 하는 J의 육감이었음을 알지만, 정작 그것을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이야기를 끝까지 읽은 후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과일에 절인 꿀과 같이 진득한 사랑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결코 평범한 로맨스처럼 달콤 부드러운 느낌은 아니죠. 그 달콤함에 홀려 흐르는 꿀에 빠진 벌레가 결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 글을 완독 한 지금에서야 초반부의 표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쉬운 것은 말씀드렸듯 이건 글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겨우 이해가 되는 사랑입니다. 여전히 초반부의 분위기가 로맨스라고는 생각할 수 없음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전체적인 분위기 조성 자체는 무게감 있고 결코 달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좋았습니다. 그렇기에 자신 있게 좋은 분위기의 글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좋은 로맨스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둘의 로맨스가 조금 갑작스러운 감이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사랑한 후에 반응과 감정뿐 어째서 그것이 사랑이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생각합니다. 뭔가 이 점은 고전 문학의 전형적인 전개라고 생각하기도 하여서 크게 지적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글에서 나온 둘의 절절한 사랑 묘사는 정말로 좋았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그것이 얼마나 애절하며 간절한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 부분은 정말로 좋았다 생각합니다. 특히 Y가 J에게 손을 내밀고 J가 그에 응한 부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속으로 그래, 이게 로맨스지~ 같은 생각을 하며 쾌재를 불렀습니다. 허나 그렇기에 갑작스러운 감정선과 사랑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합니다. 저는 둘의 절절하고 애절한 사랑이 정말 좋았지만 그 사랑에 도달하기까지의 둘의 심리 묘사는 아쉬웠습니다. 특히 후반부에 힘을 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운명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지 W이 어째서 J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조차 알 수 없어 아쉬움이 컸습니다. 굳이 단서를 조합해 보자면 자신의 앞에서도 당당하고 자신의 말문을 막히게 한 J에게 흥미를 느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조차 확실하지 않은 막연한 추측에 불가합니다. 여성 편력이 심하다는 요한이 어째서 J에게 반하게 되었는지, 그가 처음부터 진심이었는지, 그 소문이 진실이 아니었던 것은 아닌지, 떠오르는 의문은 많았지만 끝까지 그것을 해소할 수는 없었습니다. 필자의 의도라면 이해하나 J를 사랑하게 된 이유까지 글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제게 있어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코스요리에서 메인이 훌륭하였지만 애피타이저와 사이드등이 영 시원찮았던 느낌이었습니다.
그 외에 초반부에 약간 의문이 드는 몇 문장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재밌고 훌륭한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전 문학과 같은 느낌을 주었기에 흥미가 갔고 실제로 그와 같은 즐거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기에 더욱 아쉬움과 동시에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