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의 평화로운 어느 날의 아침.
근래 체감이 될 듯 말 듯 짧아진 해에 슬슬 두꺼운 옷을 꺼내 입어야 할까 고민할만한 날씨가 굳게 닫힌 창문을 간지린다.
"하암...."
날씨에 맞지 않게 조금 얇은 잠옷에 몸을 한번 떤 소년이 긴 하품을 내뱉으며 창문을 조심스래 열어젖힌다.
소년은 방금까지 창문을 간지리던 조금 찬 바람을 맞아 잠을 깰 심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찬 바람보다 먼저 소년을 반긴 건 이른 시간에도 시끄럽게 오가는 사람들의 소리와 저 멀리 공장에서 조금씩 검은 매연이 새어 나오는 풍경이었다.
"흠...."
슬슬 겨울옷을 꺼내야 하나, 아니 조금 이를지도.
그런 생각을 하며 소년은 뒤늦게 들어온 찬바람에 몸을 한번 떨었지만 고작 추위 따위가 소년의 아침 루틴을 깰 수 없다는 듯 그는 방문을 더욱 활짝 열고 침대에서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며 굳게 닫힌 문을 열어 찬기가 만연한 거실로 발을 내딛는다.
잠도 깰 겸 거실을 둘러보던 소년은 제 방이 아닌 소파에 누워 그것도 반쯤 흘러내린 자세로 잠을 청하고 있는 청년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곤 이내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직 조금의 잠기운이 남아있지만 소년은 익숙하게 주전자에 물을 따르고 최근 새로 들여온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여 물을 끓인 뒤 찬장에서 원두 봉투를 꺼내 가볍게 들리는 봉투에 슬슬 새것을 사 와야 하나 정도의 생각을 하며 그라인더에 원두를 갈아낸다.
한 3분이나 지났을까.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에 소년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꽤나 빠르다고 생각하며 갈아놓은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부어 자신의 정신을 맑게 해 줄 커피를 내렸다.
-삐걱... 삐거덕
그쯤 들리는 삐거덕 소리에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그의 예상대로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소녀가 부스스한 머리를 채 정돈하지 않은 채 졸음기를 가득 담은 발걸음으로 위층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 탓일까, 소녀의 얇은 쉬폰 잠옷 위에는 최근에 그녀의 고향에서 온 소포에 딸려있었던 숄이 걸쳐져 있다.
수마를 이겨내지 못한 소녀는 계단에서 내려오고도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가 소년의 시선을 눈치채곤 화들짝 놀라며 그것이 못내 부끄러웠는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넨다.
"..아! 필...? 어.... 좋은 아침이에요? .... 커피냄새가 좋네요."
"좋은 아침 클로이, 한잔 줄까?"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어 작게 들리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소년은 부러 답하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거절한 것을 다시 제안할 정도로 특별한 일은 아니니까. 아직 잠에 취해있는 것 같은 소녀였지만 소년은 더 이상 그에 신경 쓰지 않고 어느새 우러난 커피를 제 잔에 천천히 따랐다.
"햐~ 환상적인 커피 냄새구만! 로니~ 이 아빠를 위해 모닝커피를 내려주다니! 이 아빠는 기뻐~!"
"아침부터 이상한 소리 마시고 잠이나 깨시죠."
소파에 누워있던 필은 어느샌가 일어나 비척비척 세 사람 몫의 빵과 잼을 준비하던 클로이와 자신의 커피를 내리고 있던 로니가 있는 주방으로 다가가 1인분보다 조금 더 많게 내려 남은 커피를 머그잔에 따르며 클로이가 건네주는 빵 한 조각을 받아 한입 크게 베어문다.
"음? 오늘은 카야잼이네?"
"아, 네.... 딸기잼이 다 떨어졌더라고요. 호... 혹시 입에 안 맞으시는 건가... 요?"
"아니 아니~ 그냥 좀 새롭다 싶어서~"
커피를 홀짝이며 거실로 향하는 필에게도 카야잼을 바른 빵을 건넨 소녀가 낑낑대며 찬장 위에 있는 코코아 가루가 든 병에 손을 뻗으며 물음에 답했다.
"여차~ 이거 맞지?"
"아, 감사합니다...."
클로이가 손을 뻗었던 병을 옆에서 팔을 뻗어 잡아 그녀에게 건네준 필은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다음번엔 그냥 내려달라고 해~라며 헤픈 웃음을 띄웠고 코코아를 넣을 우유를 끓이던 클로이는 몇 번이나 찬장의 유리병을 깨 먹었던 필을 떠올리며 어색하게 웃음으로 무마하며 가스레인지의 불을 살짝 더 세게 올렸다.
"오, 이게 이번에 그렇게 선전을 하던 가스레인지지?"
"네... 아, 그러고 보니 필은 출장을 다녀오셨으니까... 아직 한 번도 못 써보셨나요...?"
"음~ 아무래도 그렇지!"
이참에 써보자~라고 말하며 달걀 바구니를 찾는 필에 소녀는 구석에 있던 달걀 바구니에서 달걀을 하나 꺼내 조심히 그에게 건넸다.
"오~ 센스 좋은데 클로이?"
달걀을 찾는 소리에 어느샌가 일인용 소파에 기대 있던 로니가 주방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미덥지 못하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에이~ 내가 세 살 베기 어린애도 아니고 설마 그러겠~"
-파각!
"겠~... 네?"
처참한 파각소리와 함께 필의 손에서 떨어진 달걀은 멋진 궤도를... 아마 다이빙이라면 10점 만점에 13점을 받고 달걀이란 이유로 3점 정도가 깎일 것만 같은 훌륭한 낙하자세로 바닥에 떨어졌고 그 결과 처참하게 깨져버리고 말았다.
"아하하~....."
평화로웠던 2층의 아침의 평화는 떨어진 달걀과 어색하게 웃음으로 무마하려 들며 로니의 시선을 피하는 필의 웃음소리와 함께 처참하게 깨져버리고 말았다.
"......"
잠깐의 침묵과 떨리는 클로이의 눈동자와 한가로이 창가에 앉아있던 새의 눈동자가 아이컨택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필!!!!!!!!!!!"
"....히끅!!"
3층 건물을 뒤흔들 만큼 시원하게 내지를 로니의 고함소리에 불쌍하게 떨고 있던 클로이는 크게 움찔하며 딸꾹질을 시작했고 평화로운 아침을 즐기며 클로이와 잠깐의 아이컨택 시간을 가진 새는 푸드덕 소리와 함께 날아가 버렸으며 사건의 범인인 로니는 날아가는 새보다 빠른 속도로 와하하핫!! 그러고 보니 신문을 받는 걸 깜빡했구나~라고 말하며 1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
"......히끅!"
그렇게 2층에는 아직 딸꾹질이 멈추지 않은 클로이와 멋진 다이빙 실력을 뽐내고 장렬히 전사했던 이 사건의 피해자인 깨진 달걀, 그리고 커피를 내려놓고 이마를 짚으며 인상을 쓰고 있는 로니가 남게 되었다.
"어.... 히끅! 으음... 그.... 히끅! ....."
여전히 딸꾹질이 멈추지 않은 클로이가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달싹이다 식빵의 뚜껑보다 깊이 주름진 로니의 이마를 힐끔 보곤 조심히 깨진 달걀 껍데기를 주워 버리곤 걸레를 가져와 조심히 달걀의 최후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저기 로니~? 신문 가져왔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어 2층의 분위기를 살피던 필이 조금 소심해진 목소리로 필의 눈치를 살피며 오늘자 신문을 흔들어 보인다.
신문을 보곤 자신의 미간에 생긴 주름만큼이나 깊게 한숨을 내쉰 로니가 한번 더 한숨을 푹 내쉬더니 1층으로 향하는 계단, 필이 있는 쪽으로 손을 뻗으며 짜증과 해탈함이 서려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필.... 아침만큼은 좀 조용히 넘어가자고요."
신문은 주세요. 그 말에 필은 언제 눈치를 봤냐는 듯 밝은 웃음을 머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밀어진 로니의 손위에 신문을 올려둔 필이 달걀의 최후를 수습하고 있던 클로이에게로 다가가 일손을 거두려 했다.
"아, 그.... 괜찮아요. 혼자 할게요."
소심하지만 단호한 거부에 다시 한번 도움의 손길을 내밀려던 필은 클로이의 도와주겠다는 마음은 고맙지만 네가 손을 대면 일이 더 커질 것 같으니 그냥 거실에 앉아서 아침이나 먹어주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은데라는 눈빛에 사랑이 변했어~ 같은 소리를 하며 거실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던 로니에게로 흐느적거리며 향했다.
-찌릿
물론 필의 단호한 거부의 눈빛, 굳이 해석하자면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정도의 눈빛을 직격으로 맞고는 아침에 자고 있던 자세보다 조금 더 흘러내린 상태로 침대 대용으로 썼던 소파에 몸을 뉘었다.
"흐윽.... 로니도 클로이도 변했어~... 아빠~ 하고 귀엽게 부르면서 아빠 없이는 못 살아~ 크면 아빠랑 결혼할 거야~ 같은 소리를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없는 과거사 날조하지 마세요!!!"
어두운 기운을 폴폴 풍기며 소파에서 훌쩍이는 필과 그런 필에게 일침을 날리는 필을 은은하게 쳐다보던 클로이는 어느샌가 깨끗해진 바닥에 한숨을 돌리며 걸레를 조물 거리며 빨기 시작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이는 좋은 것 같은데~....'
투닥이는건지 일방적으로 혼나고 있는 건지 모를 둘을 보던 클로이는 다시 한번 달걀 바구니의 안에서 마지막 달걀을 꺼내곤 달걀도 다 떨어졌네 같은 생각을 하며 가스레인지 위에 무쇠 프라이팬을 올려 달구기 시작했다.
"애초에 달걀은 또 왜 깨 먹은 겁니까!!!"
"그야 프라이가 먹고 싶었는걸~! 가스레인지도 써보고 싶었는걸~ 두 사람처럼 젊지 않은 나는 몸으로 유행을 익혀야 한단 말이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애초에 당신도 20대 아닙니까! 기껏해야 우리랑 세네 살 차이밖에 안 나면서 50대 아저씨 같은 말은 또 뭡니까!"
두 사람이 왁왁되는... 정확히는 필이 이상한 소리를 하면 로니가 일침을 날리는 소리와 함께 달궈진 무쇠팬 위에서 익어가던 달걀은 완벽한 써니 사이드 업(Sunny side up)의 형태로 필이 한입 베어 물었던 카야잼을 바른 빵 위에 안착했다.
"저기.... 그....."
필의 아침식사를 들고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쉰 클로이가 혼란스러운 거실로 조심스럽게 향해 여전히 소파에서 반쯤 녹아 어두운 기운을 폴폴 풍기며 훌쩍이던 필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두드리곤 들고 있던 그의 아침 식사를 건넸다.
"....필이 좋아하시는..... 어, 맞죠? 음... 아무튼 서니 사이드 업으로 익힌 계란이에요... 아침은 거르면 안 되니까요...."
"....클로이!!"
클로이와 그녀가 내민 자신의 아침밥을 번갈아가며 본 필이 입을 틀어막으며 감동으로 눈을 빛내다가 내밀어진 자신의 아침밥을 앞의 탁상에 내려놓곤 클로이를 꼭 안아 그녀의 머리에 얼굴을 마구 부비며 남는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는다.
"어쩜...!!! 어쩜 이리 착한 아이가!!! 이 아빠는 기쁘단다!!! 착한 아이구나 클로이~!!!"
"으아.... 으아아아...! 자.... 잠깐만요 필...!"
"필!! 뭐 하는 겁니까, 클로이를 괴롭히지 마세요!!!"
잠시 필이 클로이에게 사랑과 애정을 듬뿍 담아 폭풍 쓰다듬을 하고 그에 클로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다시 한번 로니의 호통이 울려 퍼지는 시간이 있었다.
".......하아."
"........"
"음, 맛있어~! 애정이 담겨있는 맛! 이것이 아빠에 대한 사랑!!"
일어난 지 한 시간 채 되지 않았건만 이미 너덜너덜해진 로니와 클로이. 그리고 클로이가 만들어준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는 필이 다 함께 소파에 앉아 거실에서 언제나처럼 이기에 이제는 이게 평화로 보이는 그런 아침을 보내게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로니, 달걀이랑 딸기잼이 다 떨어졌더라고요. 빵도 거의 다 먹었고요."
"커피 원두도 슬슬 다 떨어져 가는 것 같던데.... 오늘 의뢰가 있었나?"
"어.... 그.... 아뇨...."
두 사람이 잠시 탐정사무소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필이 로니가 내렸던, 하지만 허락은 받지 않은 커피를 홀짝이는 시간이 있었다.
"....그럼 있다가 점심 먹고 장을 봐와야겠네."
"아.... 네!"
그리곤 테이블에 있던 수첩과 만년필로 장을 봐올 물품들을 적는 로니와 그런 로니의 옆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열심히 생각하여 말하는 클로이를 빤히 지켜보던 필이 말했다.
"있지~ 나도 따라갈까?"
....왠지 장보기도 무척이나 험난할 것 같은 아침이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