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이란 무엇일까요. 모나지 않은 집안, 하루하루 배곯을 걱정 없이 제 꿈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 서로 죽고 못 살지도 그렇다고 폭력이 일어나거나 크게 싸우는 일은 없는 가족관계, 성적은 중상위권 수도권 대학은 조금 힘들 수 있지만 지방의 괜찮은 대학정도는 무난히 들어갈 수 있는 머리와 성적. 이 정도면 실로 평범하다 할 수 있습니다. 성격도 그다지 모나지 않고 까칠하다는 평을 듣지만 친구도 부족하다 느낀 적은 없는 이것은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던 신 혈이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그럭저럭 좋은 집안, 원만한 교우관계, 괜찮은 성적. 이 삼박자를 갖춘 그는 꽤 괜찮다는 평을 듣는 지방 대학에 입학하여 다른 이들처럼 군대를 갔다가 복학하고 원만하게 졸업하였습니다. 잠깐 대학원의 유혹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능히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그가 진로를 고민하던 와중 한 구인 공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은 연구원을 모집한다는 구인공고. 평소 파충류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가 한 번쯤 들어봤던 회사가 파충류의 재활에 사용하는 의료기구를 만들 연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였습니다. 물론 그 자체로도 흥미로웠지만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정규직과 꽤나 넉넉한 월급. 그는 결심을 굳히고 그 구인공고에 지원하였습니다.
1차 서류 심사는 무난하게 합격. 그 후에 본 2차 대면 면접은 먼저 취업한 친구들의 조언을 따라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꽤 괜찮은 인상을 남겼는지 무사히 합격하였습니다. 최종합격으로 연구원증을 걸고 정규직으로 출근하는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가 펼쳐진 것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생에서 큰 사건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고난 없이 무난히 모든 일을 잘 처리했다는 증거. 그는 자신이 꽤나 유능하다 생각하며 힘차게 걸음을 옮겨 출근했습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대학에서 배운지식이 꽤나 쓸모가 있었지만 역시나 연구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밤을 새우며 야근을 하기도 하고 가끔 실수하여 상사에게 먼지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털리기도 하고 당연하게도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테스트를 명목으로 연구소 내의 파충류들을 유리창 너머로나마 마음껏 볼 수 있었으니까요.
물론 가끔 성능을 확인할만한 부상을 가진 파충류가 없어 직접 파충류에게 부상을 입힐 때도 있었지만 더 많은 파충류와 그 주인들의 행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은 어쩔수 없는 일. 그는 처음에 파충류에게 고의적으로 부상을 입히고 일주일을 꼬박 악몽에 시달려야 했으며 한동안 주변의 걱정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파충류들도 그의 미안한 마음을 알았는지 그를 보면 알아채고 반가워 그에게 시선을 주거나 그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등 조금 힘든 일은 있지만 그래도 첫 직장으로는 정말 괜찮은 곳이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여느 날과 같았던 그날. 사건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벌어지는 법입니다.
여느 날처럼 담당하고 있는 파충류를 살피며 전날에 비해 나아진 것이 있는지 어디를 개선해야 효과가 좋을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보고서를 작성하던 찰나 갑작스러운 정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놀랐지만 곧 예비 전력이 들어오겠거니 하고 잠시 자리에서 기다렸고 1분.... 2분.... 5분..... 어느새 30분이 지났지만 불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걱정스러웠지만 그보다 걱정되는 것은 더운 여름날 달아오른 실내의 온도를 파충류들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이 담당했던 파충류들이 걱정된 그는 서둘러 파충류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러던 와중 연구실을 착각해 다른 기계장치들이 있는 곳으로 잘못 들어가고 맙니다. 그는 당황하며 다시 나가는 문을 찾던 찰나...
-깜빡
불이 들어옴과 동시에 출구 버튼인 줄 알고 잘못 누른 기계의 전원이 켜지며 갑작스러운 전력의 복구 탓인지 작은 스파크를 발생시키더니 작은 불이 붙고 말았습니다. 그는 급히 스프링클러를 확인했지만 아까 정전의 여파인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복도에 설치되어 있던 비상시에 누르는 버튼 또한 아까의 정전으로 인해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화기를 찾아 뛰었고 그가 소화기를 들고 다시 도착했을 무렵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불은 옆옆방까지 번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이 번진 방중 하나는 그가 관리하던 파충류들이 머물고 있던 방이었죠.
그는 너무 놀라 소화기를 떨어뜨렸고 커져만 가던 불을 지켜보았습니다. 순간 스프링클러가 다시 작동되었으며 불은 빠르게 진압되었습니다. 하지만... 불속에 너무 오래 있던 파충류들은 모두 연기를 마시고 열에 익혀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불이 진압되자 그 누구보다 먼저 파충류들이 있던 방으로 들어갔지만 보이는 것은 이미 검게 변해버린 혹은 녹거나 징그럽게 피부가 벗겨지고 익혀진 파충류들 뿐이었습니다.
그는 그날부로 연구소에서 퇴사했으며 가뜩이나 까칠하다는 평을 듣는 성격은 더욱 예민하고 까칠하게 변하였습니다.
더불어 그날 이후로 파충류만 보면 그날의 관경이 떠올라 경기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