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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교

by 샌드위치 커미 2024. 10. 22.

1. 죽은 주다인이 할로윈에 돌아오는 AU

그날은 평범한 할로윈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우며 어른들은 잔뜩 신이 난 아이들에게 단 것을 너무 많이 먹지 말라 주의를 주는 소리도 간간이 들리는 그런 날이었다. 나는 그런 날 시끄러운 거리를 외로이 걷고 있었다. 향하는 곳은 부모님에게서 독립한 후 구한 자취방. 지금도 역시 자취방의 월세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알바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하하하~"
"야, 같이 가!"

거리를 가득 채운 즐거운 목소리에 문뜩 소현의 귓가를 스친 그리운 목소리가 있었다.

"할로윈을 즐긴 적 없다구?! 그럼 칠교의 10월은 무슨 재미야!!"

유독 할로윈과 같은 이벤트를 즐기기 좋아했던 그 아이, 해맑은 목소리의 주인과 처음으로 즐겼던 할로윈은 즐거운 날이었다. 그래서인가 주변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조금 질투가 나면서도 결코 싫지 않은 기분이 드는 것은 그 아이와 함께 했던 첫 할로윈의 기억이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덧씌울 수 없는 추억을 되짚으며 걸음을 바삐 한 나는 어느샌가 자취방의 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다녀왔어."

문을 열고 들어가며 주인 없이 건네는 인사는 바람이 굳어진 하나의 습관과 같았다. 자취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 아이가 "어서 와~"하고 반겨준다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한 나머지 언제부터인가 시작한 인사는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허나 대답이 들려오지 않을 것은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아이는 이미 죽었으니까. 함께 어른이 되자는 약속을 저버린 채로.

그날도 지금과 같이 가을의 끝에서 초겨울 사이로 떠나기에는 조금 추운, 그런 날이었다. 그런 날이었기에 그 아이와의 이별은 더욱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인사를 할 새도 없이 갑작스레 벌어진 사고였다. 우연하고도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르는  끔찍한 사고. 등굣길에 벌어진 졸음운전으로 인해 그 아이는 떠나갔다. 그나마 위안 삼을 것이라곤 고통은 없었을 즉사라는 것일까. 그런 것에 위안 삼는 꼴이 참으로 우습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겨우겨우 마음 한 구석의 위안이었다. 그것으로라도 위안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버틸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곧 기일이던가.'

하지만 이제는 지난 일이다. 어쩌면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 아이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할지라도 살아가고 있기에 그것은 지나간 일이다. 그렇기에 잡생각을 거두고 집 안으로 한 발자국 걸어 들어간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어서 와 칠교야~"

그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다리가 풀려 그대로 현관에 주저앉고 말았다. 여느 때와 같은 환청인가로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한 목소리와 다정한 애칭에  머리가 사고하기 전에 이미 놀란 몸이 반응하여 고꾸라지고 만 것이다. 소리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자취방 안쪽에서 들리는 우당탕 소리와 함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와악?! 큰소리가 났는데! 괜찮아 칠교야???"

이어 튀어나온 소리의 근원은 옛된 얼굴의 그 아이였다. 어쩌면 내가 나이를 먹어 그 아이의 얼굴이 옛 되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스스한 베이지 색의 머리와 일자 앞머리, 다정해 보이는 분홍색의 적안은 놀란 듯 크게 뜨여 있다. 한때 정말로 사랑했으며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다인....아..?"

내 입에서 나온 것은 이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도 결코 부정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 담긴 목소리였다. 눈앞에 네가 보였다. 분명 그날 죽었던 네가 보였다. 믿을 수 없었다. 믿을 수 없어 아직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일으켜 네게로 달렸다.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짧은 거리임에도 몇 번이고 고꾸라지기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놀란 네가 나에게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네게로 어떻게든 땅을 박차 나가서 마침내 너에게 닿을 수 있었다.

".....아."

"칠교야?! 괜찮아?? 왜 그렇게 뛰어와~!"

놀랐음에도 다정하게 다그치는 너의 목소리, 꽉 쥔 너의 팔에서 따뜻한 온기가 흘러들어왔다. 분명 산 사람의 온기였다. 꿈도 환상도 심지어 내가 미쳐버린 것도 아니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가 너의 실존을 증명해 주었다.

"...어떻게...? 어떻게 네가... 다인아... 어떻게...?"

그래서 너의 실존의 증거를 더욱 갈구하였다. 여전히 나보다 조금 큰 체구에 몸을 맡기고 매달렸다. 그 탓에 내 무게를 이기지 못한 너도 함께 바닥에 주저앉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너의 실존을 더욱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아 아무래도 좋은 것이 되었다.

"으음~ 자세히 말해 줄 수는 없는뎅... 그렇게 됐달까!"

"....뭐야 그게."

아무렇지 않은 듯 명랑하게 말하는 네 모습이 당혹스러우면서도 정말로 그때의 너와 같아 그제야 너의 존재가 실감이 났다. 정말로 살아있구나. 살아있구나.

"좀 더... 좀 더 제대로 말해줘...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정말 다인이 너야...?"

"으음... 아, 응응! 정말 나야 칠교야~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는 건 아니지?"

장난스럽게 말하는 네 모습에 뜨거운 액체가 볼을 타고 흘렀다. 정말로 너라서, 내 눈앞에 있는 게 정말로 너라서. 네가 차가운 유리창의 온기도 단단한 도자기의 냉기도 아닌 따뜻한 인간의 온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 사실이 너무나도 좋아서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에 당황한 네가 어떻게든 나를 달래려 했지만 그럴수록 밀려오는 현실감에 너의 품에 파고들기만 하고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정확히는 멈추지 못한 것이지만 무어 어떨까. 네가 돌아왔는데 그깟 눈물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그만 울고, 밥 먹어 칠교야! 밥 차려 놨어~ 어째 냉장고에 반찬이 하나도 없던데! 왜 반쪽이 됐어!"

너의 따뜻한 손이 다정히 나의 볼을 감싸 눌렀다. 걱정스러운 듯 휘어진 눈썹과 나를 보는 분홍빛의 적색 눈동자가 너의 마음을 대변해줬다.

"...잘 챙겨 먹어. 네가... 걱정하지 않게."

그런 너의 걱정에 진실을 들려주었다. 실제로 방금까지도 나의 손에 들려있었던 것은 오늘 저녁 밥상으로 올라갈 반찬들이었다. 네가 떠난 이후로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끼도 거른 적이 없었다. 분명 네가 걱정하고 싫어할 테니까. 네가 싫어할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네가 다그쳐주지도 못할 테니 애초에 다그칠 일이 없도록 하고 싶었다.

"나 독립도 했어. 네가... 답답해 보인다고 해서."

처음에는 네가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다. 내 세상을 바꿔준 게 너라서, 너만큼의 공백을 매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무작정 네가 바랄 것 같은 대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네가 평소에 말버릇 처럼 했던 "내가 없으면 우리 칠교는 어떡할래~"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네가 밥을 거르는 것을 좋아할 리 없어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부모님 아래에서 지내는 나의 모습이 답답해 보인다고 하여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했다. 친구가 없는 내가 걱정이라 하여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늘렸다. 그렇게 살아갔다. 네가 없는 세상에서 몇 년을 그리 살아갔다.

"나 그래서... 그렇게 살아서... 나... 나... 잘했어? 나, 노력했어. 정말로... 정말로..."

"...응, 노력했다. 우리 칠교 엄청 노력했네~"

더듬더듬 네가 없던 몇 년을 입에 담는 나를 너는 가만 지켜봐 주며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쓸어주었다. 내 이야기에 드문드문 맞장구를 쳐주며 너는 그동안의 나를 긍정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다정함에 무엇인가 더욱 벅차올라 너의 품에서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응, 정말로 노력했어. 잘했어 칠교야. 나, 이제 걱정 없을 것 같아."

그리 말해주며 너는 내 눈물을 닦아줘 물기 젖은 손으로 나를 일으켜줬다. 그리고는 구겨진 옷을 정리해 주며 너에게로 달려오는 길에 몇 번을 고꾸라져 붉어진 무릎을 다정히 걱정해 주었다.

"자, 그만 울고 밥 먹자. 배고프겠다. 그리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더 들려주라~"

그리고는 다시 눈물을 흘려 젖은 나의 볼을 쓸어주며 밥상으로 이끌어줬다. 밥상에는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밥이 따뜻하게 차려져 있었다. 생선은 약간 타있고 계란 후라이는 찌그러져 있으며 국은 내가 만들어둔 국을 데운 것에 불과하지만 소박하고도 너의 정성이 기득 담겨 있는 따뜻한 밥상이었다.

"이건... 언제 했어?"

"우리 칠교 기다리면서 했지~"

웃으며 나를 밥상에 앉히고 맞은편에 앉은 네 앞에는 아무것도 차려져 있지 않았다. 오직 나만을 위한 밥상이었다.

"너는?"

"응? 나? 나느은~ 그게~... 우리 칠교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서!"

먹을 수 없다는 무언의 회피에 나는 굳이 그에 대해 더 묻지 않고 뭉개진 계란 후라이를 잘라 입에 넣었다. 네 입에서 나오는 살아있는 사람과는 다른 너의 모습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우리 칠교 잘 먹네~"

"...애가 아니야."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너는 흐뭇하게 지켜보며 어느샌가 젓가락을 가져와 내 밥 위에 생선의 뼈를 발라주거나 여러 가지 반찬을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군말 없이 받아먹는 나를 보며 흐뭇한 얼굴을 했다. 왠지 아이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었지만 네가 하는 것이라 말과는 다르게 그리 싫지도 않았다.

"...잘먹었어."

"별말씀을~"

내가 식사를 마치자 설거지까지 하려는 너를 말렸다. 고작 그런 것으로 너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으니까.

"설거지는 내가 나중에 해도 돼."

"에에~ 미루는 버릇은 나쁜 거야 칠교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너는 묘한 웃음을 띠며 나의 어리광을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우리는 함께 거실의 소파로 가 함께 소파에 몸을 묻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둘이—"

"응응."

이야기를 나눴다기보다는 나의 일방적인 이야기를 네가 들어주는 시간이었지만 간간히 맞장구치며 내 이야기에 답해주는 너의 목소리가 좋아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

"응? 그래서?"

허나 내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너와의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야기를 멈추고 가만 너를 바라봤다. 너의 눈에는 처음엔 의문이 떠올랐고 두 번째에는 약간의 혼란이 스치더니 이내 체념에 가까운 납득으로 바뀌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순간 장난스러운 슬픔이 서리더니 나를 끌어당겨 안아 소파에 완전히 몸을 묻어버렸다.

"...?! 잠깐..?!"

"으하핫~ 칠교는 너무 눈치가 빨라~ 아니면 그냥 똑똑한 건가?"

그렇게 말한 너는 나를 놓칠까 무서운지 더욱 가아게 나를 끌어안았다. 순간 놀라 버둥거리려던 나도 너의 필사적인 손길에 버둥거리려는 것을 멈추고 가만 너의 따뜻한 품 속에 몸을 파묻었다. 너에게는 부드러운 섬유유연제 냄새와 따뚯하고 몽글몽글한 특유의 체향이 났다. 이제는 아득해진 향기가 다시 느껴져 반가운 마음에 나는 너의 품에 더욱 깊게 파고들어 갔다.

"...있지 칠교야~"

"...응."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네가 나를 불렀다. 약간의 슬픔과 그것을 숨기려는 밝음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너무나도 그리웠지만 왜인지 외면하고 싶은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잠깐의 침묵을 유지하다 네게 답했다. 그러자 네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리며 나를 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예상했겠지만~... 나, 이제 곧 가야 해."

"...."

그리고는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들려주었다. ...예상하지 못했다면 거짓이리라. 오늘이 할로윈이라는 것부터 밥을 먹지 못하는 네 모습, 나를 간절히 붙잡는 그 모습들이 모두 한 가지를 가리켰다.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싫어. 안돼. 가지 마."

"...하지만 그런 규칙인걸~"

"그런 거 몰라. 가지 마.

"하하~ 우리 고지식한 규칙주의자가 웬일로 규칙을 어기려 한대~?"

너는 나의 부정에도 웃으며 답하였고 그것이 조금은 원망스러웠지만 그리 말하는 너의 목소리에 깊은 슬픔이 묻어나 차마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보내고 싶지 않아. 헤어지고 싶지 않아."

"나도 그래~ 나도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만나면 안 되잖아 칠교야."

네 품에 더 깊게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너의 체향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싫어, 또 만나."

"정말~ 자꾸 억지 부리면—"

"네 꿈을 꿀게."

그 말에 너는 말을 멈췄다. 나를 껴안은 너의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네 꿈을 꿀게 다인아."

"그러니까... 오늘 밤 만나, 또 만나자."

너의 몸이 잘게 떨려왔다. 허나 그 떨림이 너의 증명이었다. 그래서 나는 너의 꿈을 꾸기로 했다.

"응. 꿈에서 만나~... 다시 만나."

물기가 묻어나지만 단호한 목소리. 허나 그와 반대로 부드러운 손길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 손길에 머리를 밭기며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놓칠세라 너의 옷깃을 더욱 강하게 움켜 잡았다.

"응, 꿈에서..."

그리고 눈을 뜨니.

"다시 만나."

아침이었다.
네가 없는 자취방에 시린 아침이 내렸다.

 

2. 좀아포 AU

그날은 여느 때처럼 평범한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평범하게 등교했으며 평범하게 인사를 나누고 즐거워하며 조금은 졸리고 지루한 수업에 집중하고 웃고 떠들기도 하였다. 그런 날, 갑작스러운 좀비 사태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지 인지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대피하고 우리는 그런 대피에 휘말려 둘이서 손을 꼭 잡고 공포에 떨며 원인을 알 수 없는 좀비무리를 피해 달아났다. 허나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정신을 차리니 우리는 임시 대피소였던 백화점에 들이닥친 좀비로 인해 생존자 무리에서 떨어지게 되었고 우리는 드넓은 구역에 고립되고 말았다. 고립이라고 해야할지 다른 생존자 무리를 만나지 못한것인지. 아무튼간 중요한 것은 이 좀비만 가득한 세상에 우리 둘만이 남겨진것 같아 너는 제법 로맨틱 하다 말했지만 나는 이런 로맨틱함을 즐길 감성까지는 없는듯 매순간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허나 내 걱정과는 다르게 우리는 꽤나 괜찮았다. 좀비가 휩쓸어가지 않은 적당한 크기의 마트를 찾아 거점을 만들고 주변에서 물건을 조달하며 그럴듯한 공간을 만들었다. 식량 역시 마트를 거점으로 하여서 일까 이곳을 탈출해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기까지 둘이 먹기에는 문제없을 만큼의 식량이 있었다. 그렇게 적당히 안정적인 거처를 찾고 식량을 확보했지만 나는 오늘 밤도 쉬이 잠에 들지 못했다.

 

"칠교야, 왜 또 안 자~ 뭐 걱정돼?"

 

그런 나의 마음을 너는 언제나처럼 가장 빨리 알아차렸다. 오늘밤도 내일의 걱정에 밤잠 이루지 못하고 잠을 설치는 내가 기어코 밖으로 나가 주변을 순찰하자 너는 그 기척을 느끼기라도 한 것인지 어느 순간 내게로 다가와 걱정스러운 말투로 내게 물어왔다. 이런 세상에서도 여전한 너의 다정함이라 조금 눈물이 핑 돌았다는 사실은 끝끝내 네게 전하지 않으리라.

 

"그냥... 조금?"

 

어물쩡 네게 대답하자 너는 웃으며 내게로 다가와 나의 찬 손을 맞잡았다. 사실은 내 손이 차가운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맞잡아준 너의 손의 온기가 과하게 따스하여 네게 열이 있지 않다면 내 손이 차갑겠거니 하고 생각하였다. 아무튼 간 그런 나의 대답이 그리 미덥지 못했는지 너는 좀비 사태 이전과 같이 조금 특이한 눈썹 모양을 하는 것이 사랑스러워 보이고 조금의 안정을 가져다줬지만 그것이 네게 전해지지는 않았는지 너는 조금 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바보~ 바보는 칠교야! 조금이 아니잖아. 엄청 엄청 심란하면서~ 우리 칠교는 항상 속으로 혼자 끙끙 앓아서 너무 속상해!"

 

진심으로 속상하다는 듯한 너의 말에 나는 무심코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네게 피해를 주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굳이 피해로 한정할 것이 아닌 걱정조차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닌 밤중에 너를 깨우지 않고 홀로 몰래 조용히 나왔던 것이니까. 걱정과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지만 그건 함께 근심을 앓을 사람을 만드는 꼴이 아닐까. 나는 그래서 그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네가 듣는다면 너무 고지식한 말이라 나무라겠지만 이것이 나의 생각인 것을 어찌할까. 그리하여 속상하다는 네게 무어라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너는 더욱 부드럽게 나의 손을 쥐어 온기를 나누어 주면서 진심을 담아 내게 말을 건넸다.

 

"칠교야~ 나한테 모든 걸 공유해 줄 필요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연인이고 서로 밖에 없잖아? 나는 칠교가 나를 좀 더 의지해 줬으면 좋겠어!"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눈앞의 너를 바라봤다. 언제 이렇게 듬직해진 걸까. 나는 고지식하고 원칙주의자 같은 경향이 있어 쉽게 앞으로 나가기 어려운 사람이다. 하지만 언제나 다정한 너는 유연한 성격으로 어느 순간 훌쩍 나의 앞을 지나고 만다. 그것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못내 서운했지만 이리 듬직한 너의 모습을 보니 그 서운함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내가 너에게 이 불안을 모두 털어놓는다면 너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받아내는 듯 하면서도 힘들어 할 것이 분명하니까. 끝내 말하지 못하고 입술을 짓이기는 나의 모습에 너는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희게 웃어 보였다.

 

"난 역시 칠교에게 못 미더운 사람인 걸까~?"

 

"...뭐? 아니...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그러니까... 그런게 아닌데..."

 

너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너에게 이런 짐을 함께 짊어져 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짐의 무게가 무거워 넘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너를 나로 인해 아프게,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혼자 짊어져야 하는 짐도 있는 법이니까. 인생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들 인생을 사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일이니까. 하지만 이것이 너에게 닿을까. 네가 이런 나를 받아드려 줄까. 그것이 무서워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달싹거렸다.

 

"정말~! 칠교! 또 안 좋은 버릇 나왔다!"

 

그런 나를 본 네가 나의 머리에 작게 딱밤을 때리며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너의 따뜻한 품에 들어가자 그간에 근심도 걱정도, 그리고 방금까지의 고뇌도 모두 녹아내리듯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홧홧할 만큼 뜨거운 너의 품이 참으로 따스하고 아늑하여 좋았다. 아주, 아주 오래 이곳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순간에 안온함에 몸을 맡기지 말고 제대로 너를 마주 봐야겠지. 너의 온기 덕에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을 받았다.

 

"...미안해."

 

"그건 안 좋은 버릇에 대한 사과일까~ 아니면~?"

 

네게 사과를 건넸다. 그리고 그런 나의 사과를 너는 웃으며 받아들였고 나의 사과가 안 좋은 버릇에 대한 사과인지 너를 믿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너에게 내 고민을 나누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인지 물어왔다. 그 어느 것도 아니었고 둘 다 맞았다. 나는 그저 나를 꼭 껴안아준 네게 미안했을 뿐이며 동시에 안 좋은 버릇에 대해, 그리고 네가 내가 너를 믿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에 대해 미안하였다. 그래서 네 품에 얼굴을 묻고 깊게 파고들어 다시 한번 사과를 건네며 말했다.

 

"...둘 다, 어쩌면 그냥."

 

"뭐야~ 제대로 정하고 사과해야지! 정말~ 칠교도 어쩔 수 없다니까?"

 

너는 까르르 웃으며 나의 사과에 작은 타박을 건네면서도 싫은 기색 없이 품으로 파고드는 나를 더욱 꼭 안아줬다. 너의 품은 내게 있어 이런 상황에 둘도 없는 안정이었으며 소중한 안식처였다. 그렇게 그날 밤은 너의 품에 안겨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잠에 빠진 채로 보냈다.

 

그리고 이후 네게 사과라도 건넨 나는 여전히 응어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응어리 때문에 밤잠을 세우지 않고 너를 찾아 네 품에  안겨 잠에 드는 것을 반복했다. 너와 함께 할수록 나 스스로가 점차 안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매일이 평안하여 밖의 상황을 머릿속 깊은 곳으로 미룰 정도의 안온한 나날이 이어졌다.

 

"칠교야! 칠교야! 방금 라디오에서 있지!"

 

그리고 그런 안온한 날을 보내고 있던 우리에게 한 가지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잔존한 생존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구조 트럭이 온다는 소식이었다. 다만 그 장소가 마트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어 우리는 정든 보금자리를 버리기로 했다. 마트에는 많은 식량이 있지만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으며 언제까지고 우리 둘이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우리는 빠르게 채비를 마치고 구조 트럭을 찾기 위한 여정을 준비했다.

 

구조 트럭이 온다는 장소는 안전한 것으로 기억하나 그곳으로 도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좀비를 마주해야 한다고 알고 있어 우리는 더욱 단단히 준비를 하였다. 위험한 도전이었지만 언제까지고 이곳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렇게 먼 여행을 결정한 우리는 정든 마트를 나섰고 초반에는 안전하게 목적지로 향했다. 하지만 구조 트럭에 도착하는 마지막 관문에서 우리는 난관에 부딪쳤다. 좀비 무리를 마주한 것이었다.

 

"...역시 내가 시선을 끄는 게 좋지 않으려나~"

 

그런 난관에서 너는 나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소리를 했다. 나는 빠르게 네 팔을 잡아채며 너를 저지했다.

 

"그러지 마, 그거 아니야 다인아."

 

"하지만... 이게 최선인걸. 칠교도 알고 있잖아? 내가 칠교보다 조금 더 달리기가 빠르니까..."

 

"그만...! 싫어, 그러지 마. 제발... 그러지 마..."

 

혼자 남겨지고 싶지 않았다. 너의 품에서 안정을 찾았는데 그런 너는 나를 버리고 살아남게 하려 하기만 하는 것이 속상했다. 그제야 비로소 이전의 너의 심정을 이해할수 있었다. 내게 공유해주기 바라는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구나. 이런 마음으로 내가 너에게 이야기를 해주길 바랐구나. 이제는... 이제는 이해 할 수 있어 나는 네 손을 꼭 잡았다.

 

"그러지 마, 우리 둘이 같이 살아나가는 거야. 그리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자. 네가 함께 짊어져 줘야 할 짐이 많아. 그리고 나도 네 짐을 함께 짊어져야겠지."

 

"...칠교야."

 

내 말에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한 너는 이내 웃으며 기쁘다는 듯 나를 안았다.

 

"그래, 우리 그러자. 서로의 짐을 짊어져 주는 거야."

 

그렇게 우리는 그 누구도 희생하지 않은 상태로 기적과 같이 좀비 무리에서 빠져나와 트럭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이전에 우리가 속했던 사회로 돌아갔다. 조금의 변화가 있다면 내가 네게서 짊을 나눠 짊어지는 것을 배웠다는 점일까.

 

이제는 함께 짊어지자.

고마워, 나의 동반자가 되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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