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가 몽유병에 걸린 썰을 풀어보려 합니다.
K는 여느 때와 같이 잠에 들었을 거예요. 그렇게 잠든 K는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게 되는 거죠. 흔히 말하는 몽유병이라는 증상이에요. 몽유병이 생긴 계기는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참아왔던 스트레스가 폭발한 것에 가깝겠죠. K는 그만큼 연약한 사람이니까요. 처음은 가볍게 방을 돌아다니며 움직이는 정도겠죠. 방문이 닫혀 있어서 딱히 나가지도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러니 나머지 두 사람도 당연하게도 K의 증상을 모르고 있을 테고요. 하지만 셋 모두 알지 못할 뿐이지 K의 몽유병은 점점 더 심해질 것 같아요. 처음엔 그저 방을 배회했던 K가 어느샌가 과거의 자신을 재현하는가 하면 자기도 모르게 울거나 웃거나 하는 이상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어쩌면 춤을 추기까지 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발걸음이 워낙 가볍고 사뿐거리는지라 여전히 두 사람은 알아채지 못하겠죠. 그리 험하지 않아서 K조차 다치지 않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는지라 자신에게 몽유병이 있다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K가 실수로 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잠에 들 것 같아요. 그리고 잠든 K는 당연하게도 일어나서 방을 배회하고 그러던 와중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는 문가로 다가가 문을 열고 집을 배회하기 시작할 것 같아요. K가 몽유병이 있음에도 동거 중인 두 사람이 알아채지 못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사라지게 된 거죠. 그렇게 집안을 배회하기 시작한 K에 두 사람 역시 K가 집안을 배회하고 있다고 눈치를 챌 것 같아요. 하지만 전지전능한 나이트메어는 K가 뭘 하든 그리 신경 쓰지 않겠죠. 기껏해야 자신의 소유물이 장식장 안을 돌아다니는 정도인데 크게 신경 쓸 게 있을까요. 그대로 다시 잠을 청할 거예요. 하지만 킬러는 그렇지 않겠죠. 자신이 증오하는 대상이,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는 대상이 밤잠을 설치게 집 안을 배회하고 있다는 게 이유일 테고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마음 안에서는 K가 왜 이 야밤에 집안을 배회하는지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섞여 있겠죠. 어쨌든 간에 나이트메어는 집안을 배회하는 K에게 신경을 끄겠지만 킬러는 방문을 열고 나와 집안을 배회하는 K에게로 향하겠죠.
그리고 집안을 배회하는 K를 마주한 킬러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집안을 K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질 테니까요. 은은하게 흘러들어오는 달빛과 얇은 잠옷을 걸친 K의 모습 그리고 흔히 볼 수 없는 새근새근 잠든 모습과 이질적 이게도 춤추듯 몸을 움직이는 그 모습에 내심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킬러는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겠죠. 그리고 킬러가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오래간만에 사람의 기척을 느낀 K는 꿈결에 그 기척을 할아버지의 기척이라고 생각하고는 눈물을 한 방울 흘리며 그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다가가 꼭 껴안을 것 같아요. 그러면 킬러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가 황급히 K를 밀치고 화를 내겠죠. 그에 잠에서 깬 K가 화들짝 놀라며 킬러에게 사과할 테고요. 그 사과가 왜인지 모르게 싫은 킬러는 더 K에게 화를 낼 테고 그 소리에 나이트메어가 나와 둘에게 짜증스럽게 야밤에 잠들지 않고 뭐 하냐고 할 것 같아요.
그리고 K와 킬러를 번갈아 보다가 K를 냅다 안아 들고는 K의 방으로 가서 K를 침대에 던질 것 같네요. 이유는 이유 모를 K의 여린 어깨를 잡고 있는 킬러의 손길에 대한 거슬림과 아무리 장식장 안이라고 해도 제자리에 있지 않고 돌아다니는 소유물이 결국엔 거슬리게 되었다는 게 이유겠죠. 나이트메어는 자라라고 한마디하고는 K의 방문을 닫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것 같고 K는 그런 나이트메어의 모습에 다정하다고 생각하며 밤잠을 설치게 되겠죠. 혹여 자기가 나이트메어의 심기를 거스른 게 아닐까 하고요. 그리고 K와 나이트메어를 따라갈 타이밍을 놓친 킬러는 무심코 두 사람을 따라가려다가 자신에게 그럴 이유가 없음을 깨닫고 짜증스럽게 방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하지만 아까 잡았던 그리고 안겼던 K의 온기가 품 안과 손에서 느껴지는 듯해서 왜인지 모르게 느껴지는 간질거림에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밤잠을 설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날 이후로 K의 몽유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