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아이는 그 자체로 사랑스럽지만 때때로 조금의 오만함을 가지기도 합니다.
아레테 프로네시스도 한때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순수혈통으로 부족함 없는 집안과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부모님. 또한 부모의 좋은 점만 쏙쏙 빼닮은 그 아이는 조금은 오만한 도련님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변 어른들은 어린아이가 자신감 넘치는 게 좋다며 귀엽게 봐주고 저와 어울리는 아이들의 무리의 중심이 되어 그 누구도 아이의 오만함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하며 동경하는 지경 당연하게도 그에 피해를 보는 사용인들도 있지만 고용된 입장에서 어린 도련님의 치기 정도야 능히 감당해야 하는 이들이기에 잠잠코 어린 도련님을 받아주니 한편으로 폭군이라 불릴만합니다.
그런 아이가 어째서 지금의 기사를 꿈꾸는 아이가 되었나 하니 그것은 조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만한 아이는 오늘도 어울리는 무리와 함께 교양을 지키는 듯 한참 때 아이들이 할만한 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개인 교습을 할 시간이 다가오고 그에 맞춰 아이들은 모임을 파하여 각자 저마다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이 역시 마찬가지. 저를 기다리고 있던 마부에게 언질 한 뒤 마차에 올라타 저번 진도를 되새기며 무료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의 눈에 스치듯 들어온 것은 골목에서의 무언가를 둘러싼 이들의 모습. 마침 수업에 들어가기 싫었던 아이는 마부에게 언질을 주어 마차를 멈추고 마부를 그 자리에서 대기시킨 뒤 옷을 한번 털고 아까 지났던 그 골목으로 걸어갔습니다. 보아하니 싸움을 하는 듯하던데 오만했던 아이는 제 말 몇 마디에 그 싸움을 파하게 한 뒤 부모님께 칭찬받으며 수업을 넘길 자신이 생각하기에 완벽한 계획에 자화자찬을 하며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아이의 눈이 틀리지 않았는지 골목은 싸움판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일방적인 구타가 한창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아이는 눈살을 한번 찌푸리더니 크게 숨을 들이쉬고 그들에게 외쳤습니다.
"너희들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당장 그만둬!"
아이는 진심이었습니다. 그 말 한마디라면 무엇이든 해결될 줄 알았거든요. 왜냐하면 지금까지 아이의 세계는 그러했으니까. 아이의 하지 말라는 외침의 사람들은 하던 일을 물렀고 아이의 단호한 한마디에 사용인들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앞으로도 아마 그러하겠죠. 다만 이 순간만큼은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단호한 외침을 들은 이들의 반응은 아이가 예상한 반응과 퍽 달랐습니다.
"....? 뭐야 이 꼬맹인."
돌아오는 것은 몇몇의 무관심과 몇몇의 냉랭한 시선 그리고 수군거림. 아이는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이들이 골목이 어두워 자신을 잘 보지 못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누군지 안다면 이런 반응일리 없잖아요?
"나는 아레테 프로네시스다! 다들 싸움을 멈춰!"
아이가 다시 한번 그리 소리쳤지만 돌아오는것은 싸늘한 냉대의 반응과 무시. 아이는 이곳에서 폭군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당황과 혼란을 느낀 아이가 다시 한번 제 이름을 중얼거리며 한창 누군가를 구타 중이던 이의 옷깃을 잡아당겼고 옷깃을 잡힌 누군가는 짜증스럽게 그 손길을 뿌리친 뒤 아이에게 경고했습니다.
"이봐 도련님. 누군지 모르겠고 알 봐도 아닌데 우리는 지금 바쁘거든? 괜히 도련님한테 손 올려서 귀찮아지기 싫으니까 그냥 갈길 가자? 응?"
태어나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그 반응에 아이는 그만 뒷걸음치다 돌부리에 걸려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프로네시스인데. 그 프로네시스가문의 아레테인데. 아이는 난생처음으로 무력함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넘어진 아이를 보며 아이를 뿌리친 누군가는 혀를 한번 차곤 다시 구타를 이어나갔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배워둔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단지 스쳐 지나갈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난생처음 격은 무력감에 절망할 때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다들 그만두어라!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기사도 정신에 어긋나!"
골목을 가득 채운 쩌렁쩌렁한 외침. 누군가 길게 기른 장발을 흩날리며 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아이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검집을 빼지 않은 채로 손에 단단히 들린 검이었습니다. 큰 소리에 누군가를 구타하던 몇몇 이들이 뒤를 돌아보았고 검을 든 누군가를 마주하자 피식 웃음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저들끼리 소곤거리는 말이 단단히 미친 미치광이라고. 그 말을 들은 검을든 누군가는 씩 웃으며 그들에게 제 장갑을 던졌습니다.
"나 기사 아서! 한 명을 일방적으로 구타하는 수치를 두고 볼 수 없네! 정식으로 그대들에게 대련을 신청하지!"
그렇게 소리친 스스로를 아서라고 칭한 누군가에 장갑을 받은 이들이 구타를 멈추고 낄낄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단단한 미치광이한테 잘못 걸렸다고. 가서 저 미치광이에게 재미 좀 보여주자고. 그런 그들의 반응을 본 아서는 씩 웃었습니다. 아이는 그 이상한 이가 걱정되어 말리려 했지만 그럴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서는 검집채로 검을 힘껏 휘둘러 자신을 비웃고 누군가를 구타하던 이들의 급소를 가격했습니다. 몇몇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쓰러지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몇몇이 지팡이를 잡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들이 무얼 할 새도 없이 단단한 겁집과 함께하는 검이 그들의 급소를 가격했고 그곳에 서있는 것은 아서 혼자였습니다.
"음... 자네 괜찮은가? 이런, 이미 기절했나...."
아서는 곧바로 검을 내려놓고 쓰러진 이를 살폈습니다. 아이는 그런 아서를 아득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는 더 이상 주변의 소음도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아서. 자신이 하지 못하였던 것을 한 기사. 아이는 홀린 듯 일어나 쓰러졌던 이를 업고 병원으로 향하려던 아서의 옷깃을 붙잡았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번에는 그 손길이 뿌리쳐지지 않았습니다.
"나... 나... 당신처럼! 당신처럼 되고 싶어! 아니... 되고 싶어요!"
아이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그것은 동경의 눈빛. 그런 아이를 본 아서는 씩 미소 지으며 그 질문에 화답하였습니다.
"오, 소년! 기사가 되고 싶은가? 기사의 길은 굉장히 험할 텐데! 어린 자네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어...! 있어요!"
한치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아서는 호쾌하게 웃으며 답했습니다.
"그럼 마법도 좋지만 검술도 게을리하지 않으며 여성과 약자를 지키고 배려하며 언제나 긍지 있게 기사도 정신을 지키면 된다네! 소년, 자네도 분명할 수 있을 거야."
호쾌하고도 시원한 미소. 아이는 결정하였습니다. 이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자고. 더 이상의 그 폭군 같던 오만한 아이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오직 찬란하게 빛나는 기사와 그 기사를 동경하여 더욱 찰란 하게 빛날 훗날 기사가 될 아이.
그렇게 아이는 기사를 꿈꾸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