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제국의 정복을 차려입은 이들이 산속 깊은 곳의 작은 오두막을 둘러싼다.
정체 모를 싹이 터있는 작은 텃밭과 한 명이 겨우 사용할만한 작은 우물 그리고 단출하게 지어진 복층의 나무 오두막은 꾸밈없이 퍽이나 초라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속세를 떠나 은둔하며 사는 이가 살기에 적절한 곳으로 제국의 정복을 차린이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둘러싸기엔 이질감이 들 정도인 곳. 그럼에도 이리 긴장이 가득한 공기가 흐르는 이유는 이곳에 머무는 은둔자가 반란군의 총책임자이기 때문.
'....싫네.'
오두막을 둘러싼 이들 중 하나인 윤이슬은 이 숨 막히는 긴장감이 싫었다. 정확히는 이 긴장감보다 지금 자신과 동료들을 긴장하게 하는 이 일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넘어서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어째서냐 묻는다면 그녀는 온실 속 화초와 같은 성격이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이름 높은 제국군의 한 축으로써 돌아가는 세상살이를 모를 정도로 바보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분명하게 이 제국은 부패하였으며 기득권층이 일반인들을 쥐어짜는 끔찍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생겨난 반란군을 그녀는 싫어하지 않았다. 본래가 다정하였으며 옳고 그름을 아는 사람이라 오히려 그들을 마음속 깊이 응원하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녀에게 그리 다정한 곳이 아니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제압하고 사살하며 방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그 흔하디 흔한 정 때문이라, 가족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으며 소중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외면할 수 없어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제국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도화야.'
비단 그런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곁눈질한 곳에는 모든 제국군을 통솔하고 있는 백도화의 모습이 보였다. 다른 이들보다 격식 있게 차려입은 그의 가슴팍에는 몇 가지 훈장까지 달려 있었다. 그것에 그녀는 오랜 동기의 비밀을 상기했다. 반란군의 총책임자와 아무런 연이 없는 그녀 역시 더없이 혼란한 마음이거늘 반란군의 총책임자와 소꿉친구는 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곳에 섰는지. 뛰어난 실력으로 이르게 진급하여 제 상사가 되었음에도 허물없이 대해주는 고맙고 다정한 제 동기가 걱정되는 마음에 입이라도 열어보려던 찰나 한 박자 빠르게 그의 입이 열렸다.
"자, 신호가 있기 전까지 대기하고 있도록."
굳은살과 흉터 가득한 손을 들어 정지의 신호를 보낸 백도화는 평소와 다름없는 밝은 목소리지만 오랜 동기인 그녀만은 알아챌 수 있는 망설임과 부정이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리 허물없이 대해도 상관인 그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이라 아무런 대꾸 없이 대기 자세로 바꾼 윤이슬은 걱정스럽게 경계조차 하지 않은 채로 오두막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제 동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어둡고 고요한 밤이었다. 달 하나 뜨지 않고 깊은 숲 속에서 올려다보는 밤하늘임에도 그저 어둡기만 하고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그런 밤이었다. 또 주위는 얼마나 고요한지 올빼미 하나 구슬프게 울지 않고 산짐승하나 뛰놀지 않는 어둠의 장막이 내렸다.
그저 적막 가득한 어두운 밤. 백도화가 오두막에 들어간 지도 꼬박 1시간이 넘게 지난 듯하나 그 적막은 유지되었다. 총소리, 칼부림, 말소리는 고사하고 작은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 기다림에 지친 제국군들이 오두막으로 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을 때쯤 오두막의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다행....'
다른 이들과 같이 제 동기를 걱정하고 있던 윤이슬이었기에 겉보기엔 상처 하나 없이 걸어 나오는 백도화를 보며 안도하던 찰나 달도 뜨지 않아 어디에서 내린지도 모를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그녀는 생각으로도 다행이라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
언제나 밝게 빛나던 눈에 적막이 찾아왔다. 그 어느 때에도 희망을 잃지 않으며 잠시 주춤하였어도 결국 장난스럽게 접히던 그 검은 눈동자에 더 없는 어둠이 내렸다. 한없이 깊은 심연을 맞아 돌아올 수 없는 그 눈은 무엇도 담지 않았으며 이제는 담을 수 조차 없었다.
달라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항상 답답하다고 스스로 보기 흉한 손이라며 툴툴거리면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가리지 않았던 그의 양손에 희고 조금은 작아 손이 다 덮이지 않는 장갑이 자리하고 있었다. 분명 눈에 띌만한 변화건만 죽어버린 그의 눈빛에 묻혀버린 것이었다. 묻힌 것은 그뿐만이 아니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는 질문도 포함되었기에 그곳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릴 수밖에 없었다.
"태워."
허나 모순적이게도 그 침묵을 깬 것은 그 침묵의 원인이었던 백도화였다. 이전에 듣지 못한 단호한 명령조와 더없이 차가운 목소리의 한마디를 끝으로 돌아서지 않고 자리를 이탈하는 그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황급히 눈빛을 주고받은 제국군은 둘로 찢어져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그의 뒤를 따라 자리를 이탈했다.
"...."
남은 이들은 사이에는 다시금 침묵이 내렸다. 그 누구도 말을 주고받지 않았으며 그저 몇 번의 눈짓으로 묵묵히 적막한 오두막에 기름을 뿌리고 불씨를 내던졌다. 아마 이 작전이 내키는 이들 또한 백도화가 이끄는 제국군 중에 몇 없었으리라. 그렇기에 더욱 조용한 화장火葬이었다.
기름 머금은 나무에 불씨의 불꽃이 옮겨 붙어 달조차 뜨지 않은 어두운 밤에 여명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 없이 밝은 아침해가 타오르고 있음에도 백도화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타오르는 열기를 느끼며 묵묵히 아침에서 도망칠 뿐이었으며 그럼에도 흰 장갑은 타오르는 불꽃의 빛으로 붉게 물들어갔다.
"...."
허나 그 열기는 곧 사그라들어 여명이 떠오른 밤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한껏 불타오른 오두막은 검게 그을려 그 형체만을 간신히 유지할 뿐이었다.
"....우리도 가자."
오두막에 남은 이들 중 한 명이 그리 말하자 하나 둘 먼저 떠난 제국군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뜩이나 적어진 인원은 더욱 줄어들어 마침내 윤이슬 혼자만이 멍하니 오두막을 바라보고 있게 되었다.
"...."
그렇게 한동안 가만히 불타버린 오두막을 바라보던 그녀는 마지막으로 하늘을 한번 올려다 보고는 이내 동료들을 따라 자리를 떴다. 그녀는 아마도 하늘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침이 오기까지 오늘 밤은 길겠구나.